한 시대의 끝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다.
우리 중 일부는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Ken Jennings가 Jeopardy에서 패하고 Kasparov가 체스에서 패한 때부터 이에 관해 글을 쓰고 장황하게 논해 왔다. 징조는 이미 뚜렷했고, 이제 글은 말 그대로 어디에나 존재한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글을 쓴다. 적어도 혼란과 추측을 불러일으킬 만큼은 잘 쓴다. 그 결과 작가들은 존립의 위기를 겪고, 독자들은 혼란스러워하며, 업계에서는 법적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작가로 성공한 이야기를 할 때면 절묘한 시기에 운이 따랐다는 말을 거의 빼놓지 않는다. Amazon이 Kindle을 출시한 지 불과 2년 뒤인 2009년에 첫 소설 집필을 끝냈다. 에이전트와 출판사를 찾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KDP, CreateSpace, ACX가 이끄는 자가출판 세계가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순전히 운이었다. 그런 행운이 없었다면 사랑해서 글을 쓰기는 했겠지만, 글로 생계를 꾸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그에 못지않게 묵직한 생각이 떠올랐다. 평생 소설을 쓰고 싶다는 내 꿈은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를 싸게 출판할 수는 있지만 싸게 쓸 수는 없었던 황금기 20년과 겹쳤다. 글쓰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출판만 더는 어렵지 않았다. 땀을 쏟아 원고를 완성한 다음 InDesign과 Photoshop 같은 놀라운 도구로 파일을 만들고, 그 파일을 KDP와 CreateSpace에 공짜로 올리면 실제 책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물론 판매와 마케팅은 언제나 별개의 문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2007년 이전, 더 정확히는 자가출판을 향한 낙인이 막 희미해지기 시작한 2012년이나 2013년 이전까지 대다수 작가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말이다. 출판 문의 편지를 쓰고, 에이전트를 조사하고, 거절 편지를 산더미처럼 모으고, 사기성 자비출판사와 사기성 서평 사이트, 사기성 콘퍼런스, 사기성 작가 지원 서비스를 피해야 했다. 더 끔찍한 경우에는 평생 모은 돈을 형편없이 인쇄된 책 수십 상자에 쏟아부었다. 그 책들은 영원히 차고에 처박힌 채 고작 열두 권도 팔리지 않았고, 인쇄비의 극히 일부조차 회수하지 못했다.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2026년인 지금, 이런 일이 벌어졌다.
여기에는 하나씩 짚어 봐야 할 황당한 대목이 많다. 선인세가 $2.4M이라니! 세상에. 데뷔 작가가 받은 금액이다. 듣기로는 잔뜩 흥분한 출판사들이 판권 경쟁까지 벌였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미친 이야기다. 그런데 갈수록 더 기막혀진다. 책 집필에 AI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단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Nigerian cartels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런 격언도 있지 않은가. 자기가 아는 것을 쓰라고. 문체와 AI의 흔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둘러싼 의문이 더 제기됐고, 책의 출처와 작성 과정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 결국 제안은 철회됐고 계약은 무산됐다.
물론 진짜 작가가 쓴 진짜 책인데 의혹만 부당하게 제기됐을 가능성도 있다. 내가 던진 Nigerian cartel 농담도 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대학 교수가 제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대학 교수의 이야기를 문학소설로 쓰는 온갖 대학교수와 다를 게 뭔가. 여러분,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하시라! 이 책이 정말 사람이 쓴 작품이라면, 어쩌면 그게 이 사건의 가장 엄청난 버전일 것이다. 인생을 바꿀 돈, 눈부신 경력의 출발, 영화나 TV 판권, 해외 계약까지 전부 손에 들어올 참이었다. 단순한 구두 제안도 아니고 계약서에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약속됐던 모든 것이 무너졌다. 오직 지금이 2026년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우리가 들어선 정신 나간 새 시대의 한 단면이다. 모든 책이 의심받는다. 신인 작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썼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 말고는 누구에게도 완벽히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생각은 잠시 기억해 두자.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사실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황당한 가능성을 살펴보자. 이 책은 AI가 생성했지만 전문 편집자들을 압도했고, 판권 경쟁을 일으켰으며, $2.4M의 선인세까지 받아 냈다. 세상에. 나는 이런 날이 오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한다고 예측해 왔는데, 어쩌면 이미 와 버린 것 같다. 상을 받는 AI 책, Amazon 베스트셀러 순위를 가득 메우는 AI 책에 이어, 이제 AI 책이 거액의 선인세를 받고 출판사들의 판권 경쟁과 흥분까지 불러일으킨다고? 이 블로그 글의 제목 그대로, 한 시대가 끝난 것이다.
그러니 다시 행운의 시기 이야기로 돌아가게 된다. 글쓰기는 어렵지만 출판은 쉬웠던 시절은 20년도 채 이어지지 않았다. 그 시기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영원히.
나는 2007년 이전에 살며 작품 활동을 했던 작가들을 늘 안타깝게 여겼다.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선택지 때문에 삶은 필요 이상으로 어려웠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과정은 잔혹했다. KDP가 등장한 뒤부터 그런 고통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됐다.
이제는 2026년 이후 이야기를 쓰려는 사람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들은 영원히 의심받을 것이다. 나처럼 em dash를 좋아하거나, 나처럼 물 흐르듯 이어지는 run-on sentence를 즐기거나, Proust를 읽으며 찬란한 문장에 온몸을 맡기는 법을 배우며 자랐거나, iambic pentameter가 뼛속에 스며들도록 sonnet을 외웠다면, 빌어먹을 봇처럼 들릴 것이다.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10년에 가까웠다. 자가출판이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을 2014년 무렵, 도구의 발전으로 AI 글쓰기가 실용화된 시점을 2024년 무렵이라고 볼 수 있다. 쉬워야 할 부분은 쉽고 어려워야 할 부분은 어려웠던 시절은 고작 10년이었다. 미친 일이다. 언어가 존재한 10만 년 가운데 단 10년이라니.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몇 가지 예측이 있는데 하나같이 황당하다. 첫 번째 예측은 출판사들이 몇 차례 대형 AI 스캔들을 버텨 내겠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이익을 더 중시해 슬쩍 넘어가기 시작하리라는 것이다. 대형 출판사가 내는 AI 책은 편집자의 손을 거칠 것이고, 나중에는 출판사들이 AI가 쏟아 낸 허접한 글을 일부러 덜 매끈하게 만드는 내부 도구도 개발할 것이다. 그러면 서점에는 기계가 쓴 책과 인간이 쓴 책이 나란히 진열된다.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각오하시라. 코르티솔이 부족하다면 마음껏 분노해도 좋다.
또 다른 예측은 대부분의 독자가 책이 기계 작품인지 인간 작품인지에 관심을 두는 정도가 지금 출판 브랜드에 관심을 두는 정도와 비슷하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의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어떤 책 시리즈가 입소문을 타면 독자들은 완전히 빠져들 것이고, 이야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주류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팬픽션이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내가 작가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거 읽지 마. 자가출판한 책이잖아”라고 지껄이는 자식들을 무시한 독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신 “그래도 재밌어?”라고 물었다. 나는 그들 덕분에 글로 먹고살 수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 뒤의 사연에는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 자체를 찾아 나서는 독자들에게 언제나 애정을 품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 가운데에서도 기계가 쓴 책을 일부러 찾아 읽는 소수가 생길 것이라고 본다. 체스 커뮤니티에서 이미 이런 모습을 봤다. 체스 팬들은 특정 엔진을 사랑하게 되고, 그 엔진이 ‘생각하는 방식’의 열렬한 팬이 된다. 자기 엔진을 다른 엔진과 대결시키고 경기를 샅샅이 분석한다. 엔진이 업데이트되거나, 모든 grandmaster를 꺾거나, 새로운 opening이나 gambit을 발견하면 흥분한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커뮤니티다. 이런 독자도 아주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얕봤다가는 큰코다친다. 그중 일부는 이런 방식으로 독자가 된 뒤 인간이 쓴 책으로 독서 영역을 넓힐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 출판 작가들은 내 경력을 가능하게 해 준 부류의 독자들을 몹시 싫어했고, 온갖 모욕적인 이름으로 불렀다. 나는 이 모든 일이 반대편에서 전개되는 모습을 이미 지켜봤다.
기성 작가들도 AI의 도움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글쓰기뿐 아니라 자료 조사, 표지 그림, 편집, 이메일 회신, 비서 업무, 마케팅, 그리고 아직 발명되지도 않은 수천 가지 일에 AI를 활용할 것이다. 모든 작가가 그렇게 할 것이다. 나부터 이미 그러고 있다. 얼마 전 작업 중인 단편소설을 위해 Google에서 “작품을 번역할 때 언어학자가 사용하는 도구”와 “모든 언어의 기본 요소는 무엇인가”를 검색했다. 검색 결과로 나온 것은 블로그나 학술 자료가 아니라 AI 요약이었다. 거기서 필요한 답을 얻고 곧장 글쓰기로 돌아갔다. 같은 때 에이전트에게서 해외판 표지를 승인해도 되겠느냐는 이메일이 왔다. Gmail은 내 이전 답변을 바탕으로 곧바로 “멋지네요! 승인합니다!”라는 문구를 제안했다. 두 번 클릭하자 이메일이 전송됐고, 나는 다시 글쓰기로 돌아갔다.
이 블로그 글도 빌어먹을 프롬프트 하나로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AI가 학습할 만한 블로그 글이 수년 치나 있고, 소설도 20권 넘게 썼으며, 단편소설도 수없이 많다. 프롬프트 하나만 입력하면 이 모든 글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목표가 블로그 글 한 편이라면 이 시대가 정말 마음에 들 것이다. 목표가 단어로 생각하는 기쁨이라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로 이것이 진짜 핵심이다. 그 일 자체를 사랑해서 하는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문제는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하는 방식만 바꾸려고 블로그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글이 인생을 바꿔 주기를 바란다. 구독자가 늘고, 광고 수익이 생기고, 업계 관계자의 눈에 띄고, 누군가와 잠자리를 갖게 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다 잠자리 이야기를 농담으로 꺼냈다는 이유로 퇴출당할 수도 있다. 이런 기대의 대부분은 글쓴이가 통제할 수 없다. 지금 예술계에서 반사적인 분노가 이토록 거세게 터져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가가 되기 이보다 쉬웠던 적은 없다. 예술가인 척해서 돈을 벌기 이보다 쉬웠던 적도 없다. 그러니 생계를 꾸리는 것을 목표로 삼은 예술가에게 이보다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대도 없었다.
이 모든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 내가 꿈꾸는 세상에서는 로봇이 지루한 일을 모두 맡고, 인간은 창작하고 서로 관계를 맺고 우주를 배우며, 거대하고 풍요로운 순환 속에서 생각과 창작물을 나누는 데 모든 시간을 쓴다. 그런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것은 물리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인간 본성의 법칙에는 훨씬 더 크게 어긋난다. 우리가 실제로 맞이할 미래는 앞서 예측한 일들이 뒤섞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 조합에서 한 부류를 빼놓았다. 지금부터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인간이 쓴 책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이야기 뒤의 사연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 Molly Fyde 시리즈를 집어 들고 그 책을 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내가 20대에 낡고 볼품없는 작은 배를 타고 외국 섬들 사이를 몇 년 동안 항해했다는 사실, 꾀죄죄한 떠돌이로 살며 온갖 소동에 휘말리고, 죽을 뻔하고, 스스로 목숨을 잃을 뻔하고,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지고, 놀라운 친구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마음을 쓸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을 젊은 조종사가 우주선을 몰고 광활한 우주를 가로지르는 이야기로 바꿨다는 것도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이들에게는 작가가 중요하다. 오디오 애호가가 바이닐 음반을 듣듯 책을 읽을 것이다. 오타 하나하나가 기분 좋은 튀는 소리와 잡음이 된다.
이들은 주로 고전을 고집할 것이다. 기원이 분명하고 창작 과정이 검증됐기 때문이다. AI 시대와 활동 시기가 겹친 작가들을 두고는 와인 애호가가 빈티지를 논하듯 말할 것이다. “아, 그래. 그건 2009년 Scalzi야. Anthropic과 계약하기 전이지. 그때 작품이 진짜 좋았어.” 하지만 가장 멋진 일, 그리고 지금 여러분 대부분이 가장 기대하기를 바라는 일은 아직 발명되지 않은 도구를 통해 다음 세대의 인간이 썼다고 입증된 책이 탄생하리라는 점이다.
책 한 권의 집필 이력을 전부 기록하는 도구 말이다.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머지않아 AI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 이력을 만들고, 단어를 입력하고, 백스페이스를 누르고, 수정 기록을 생성하는 일을 몇 달에 걸쳐 흉내 낼 수 있다. 타임스탬프를 조작하거나 실시간 웹캠까지 속일 수도 있고, 그 밖에 무슨 짓을 할지는 누가 알겠는가. 결국 글쓰기가 행위예술이 되어야 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비디오게임 스트리머가 게임하는 모습을 본다. 수백만 명이 그렇게 한다. 책을 쓰는 전 과정을 생중계하는 작가도 등장할 것이다. 이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오늘 당장 방송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한 사람이 전 과정을 모두 보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많은 사람이 여기저기 접속해 지켜볼 것이며 영상은 YouTube에 남을 것이다. AI의 도움을 받은 Google 검색, 회신한 이메일, 피할 수 없는 모든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면 그 $2.4M 수표는 손에 든 카드가 aces인 것처럼 확실히 결제될 것이다. 어쩌면 blockchain이 처음으로 합법적인 쓰임새를 찾고 모든 crypto bro가 출판계를 장악할지도 모른다. 내 빌어먹을 인생을 통틀어 가장 디스토피아적인 발상이다.
이제 요점만 말하겠다. 이 블로그 글을 요약하라는 요청을 받은 AI가, 블로그 글조차 읽기 귀찮아하는 게으른 자식에게 전달할 요약이다. 그런 독자는 내 나머지 생각도 읽기 귀찮아할 테니 나는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 앞으로는 아주 다양한 결과가 나타나며, 그 모든 결과가 공존할 것이다. AI 책은 서점에 진열돼 판매될 것이다. 이미 그렇지 않을 리가 없다. AI 책은 상을 받을 것이다. 일부는 기계가 쓴 책을 위한 대회에서 받고, 일부는 인간이 쓴 책을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 받을 것이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강한 의견을 가진 독자도 있고, 책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안겼는지에만 강한 의견을 가진 독자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돈이 돌아갈 것이다. 수많은 다른 작가에게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으니 무슨 말인지 잘 안다. 인간이 책을 더 쉽게 쓰고 출판하도록 돕는 도구도 등장할 것이다. 나도 지금 몇 가지를 만들고 있으며, 그중에는 오래전부터 블로그에서 이야기해 온 꿈의 글쓰기 도구도 있다. 기계가 책을 더 쉽고 훌륭하게 쓰도록 돕는 도구도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난장판은 더욱 미쳐 갈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우선 지난 몇 달 동안, 이 정신 나간 기회의 문이 닫히고 다음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미발표 단편소설을 전부 세상에 내놓으려고 서둘러 움직였다. 컴퓨터 3대와 내 모든 이메일 계정을 뒤져 찾을 수 있는 작품은 모조리 긁어모았고, 편집하고 다듬어 출간할 준비를 했다. 작품을 한데 모아 에이전트와 편집자에게 보내기 전에 여러 번 손보면서, 이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처음 맛봤다. em dash나 긴 문장, 짧은 단정문, 또는 요즘 AI가 하는 정체 모를 무언가를 발견할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물론 AI마다 특징은 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글을 쓰면서 늘 품었던 고민들, 이를테면 철자가 맞나, 나는 바보인가, 누군가 이 글을 좋아할까, 나는 이 글이 좋은가,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전개해야 했나 같은 고민에 이제 하나가 더 붙는다. 이거 AI처럼 들리나?
그런데 말이다. 실제로 그럴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AI처럼 들리는 게 아니라, AI가 나처럼 들리는 것이라고 스스로 되새겨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나는 빌어먹게 많은 em dash를 쓰고 comma splice를 저질러 왔다. 그때도 재미있었고 지금도 재미있다. 그러니 작가를 꿈꾸는 사람, 기성 작가, 독자, 출판사에 조언하겠다. 그 일 자체를 사랑해서 하라. 다른 사람들은 클릭이나 돈 때문에 할 것이다. 그들에게 클릭이나 돈이 쏟아지고, 상이 주어지고, 이를테면 무작위로 하나만 꼽자면 현재 AppleTV 1위 프로그램을 만들 기회가 찾아오면 여러분 마음 한구석에서 질투가 피어날 수도 있다. 그 질투가 몸 안에 고이지 않고 통과해 지나가게 두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자리에 앉아 글을 써라.
여러분, 새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 장담하건대 지난 시대만큼 좋지는 않다. 지난 10년은 작가로 살기에 역사상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Crypto bro들이 나타나 우리를 구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source https://hughhowey.com/the-end-of-an-era/
HN에서는 AI가 인간만큼 글을 쓴다는 전제부터 의심하는 반응이 두드러졌다. 문법에 맞고 매끄러운 문장을 만드는 능력과 좋은 글을 쓰는 능력은 다르다는 판단이다. AI 소설을 접해 본 독자들은 분량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고, 장편에서는 설정과 서사의 일관성을 놓치며, 익숙한 장르 문법을 되풀이하는 데 그친다고 지적했다. 작가의 목소리와 경험을 읽는 독자에게는 누가 썼는지도 작품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
더 큰 문제는 출판 시장의 구조다. AI가 평범한 글을 대량으로 쏟아내도 독자가 책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늘지 않는다. 신인 작가는 검색과 추천에서 더 쉽게 묻히고, 광고비나 기존 인지도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진다. 거액의 출판 계약이 철회된 사례 역시 AI가 편집자를 압도했다는 증거로 보기 어렵다. 출판사가 원고보다 기획과 소개 문구를 먼저 보고 계약했거나, 검토 과정에서 지름길을 택했을 가능성을 짚는 댓글이 이어졌다.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할 여지는 인정했다. 전체 원고에서 오류와 설정 충돌을 찾고, 방대한 자료나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관리하는 데는 쓸모가 있다. 정형화된 실용문이나 반복성이 강한 장르에서는 대체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다만 독창적인 세계와 관점을 만들려면 장르를 오래 읽고 직접 쓰면서 무엇이 좋은 이야기인지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강했다.
작가와 출판사는 AI 사용 여부만 밝히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작품을 이끈 경험과 판단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초고와 수정 기록으로 창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공급이 넘칠수록 독자는 고유한 목소리, 편집 책임, 오랫동안 쌓인 신뢰를 기준으로 책을 고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