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AI에게 제대로 ‘지시’하는 비법
한 시니어 개발자분이 좋은 글을 써주셔서 퍼왔습니다.
출처: 이창원님의 페이스북
생성형 AI로 코딩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뭔가 하면 "지시"를 잘 해야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뭘 하라고 잘 써줘야 인공지능이 제대로 생성을 한다. 문제는 "지시"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냐는 것으로 귀결된다. 글쓰기 교본을 구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할까? 그래도 된다. 단 글쓰기 재주는 배워서는 한계가 있고 타고 나야 된다.
쉬운 방법이 있다. 지시할 내용을 먼저 아래 그림과 같이 그려본다. 순서도라 불리는 것이다. 문제가 주어졌을때 이런걸 그려보는 연습을 해보면 어렵지 않게 누구나 할 수 있다. 아래 순서도는 지름신이 강림 했을때 대응책을 그린 것이다. 누구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혼선도 없다. 이걸 처음 부터 글로 한번 써보라 자기가 써놓고도 이해가 잘 안될 것이다.
그림에 익숙한 사람은 이런 순서도를 그려서 인공지능에게 던져주고 글을 써보든지 프로그램을 짜든하라고 하면 된다. 그림에 익숙하지 않다면 슈도코드를 써 볼 수 있다. 슈도 코드는 본격 프로그래밍 언어는 아니고 인간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흉내내서 쓰는 코드다. 순서도는 슈도코드로 쉽게 변환이 된다. 슈도코드를 인공지능에게 주면 원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거의 완벽한 코드를 생성한다.
무슨 말을 하는거냐 하면 언어모델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면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말이다. 순서도는 프로그래밍 공부의 일부다. 아래 순서도를 기반으로 언어모델에게 지름신에 대해서 글을 써보라고 했다. 그냥 지름신에 대해서 쓰라고 하면 절대 이렇게 구조적으로 못 쓴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인공지능이 쓴 것 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사고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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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예고도 없이 그분이 찾아오신다. 바로 지름신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이건 사야 해!'라는 강력한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일단 심호흡을 하고 잠시 멈춰 서야 한다. 가장 먼저 점검할 것은 내 안에 한 줌의 이성이라도 남아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이성이 이미 가출했다면... 뭐, 어쩔 수 없다. 그대로 지갑을 열거나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수밖에. 하지만 다행히 아주 작은 이성의 불씨라도 남아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일단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본다. 숫자들이 '안녕, 잘 지내니?'하며 반갑게 인사할 정도로 넉넉하다면, 마음 한편이 이미 결제 완료 버튼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잠깐, 여기서 바로 지르면 진정한 지름신 대응이라 할 수 없다. 잔고가 넉넉하지 않다면? 혹은 '텅장'에 가까운 상태라면? 이때부터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혹시 비상금으로 숨겨둔 돈은 없는지, 아니면 먼지 쌓인 저금통이라도 깨야 하는 건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본다. 그것도 없다면, 최후의 보루인 카드가 남아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카드가 있다면 잠시 안도감이 들지만, 동시에 다가올 카드값의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신용불량의 아슬아슬한 경계선까지 나를 몰고 갈 것인가? 잠시 고민한다. 여기서 '에라 모르겠다' 시전이 가능하다면 당신은 진정한 용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시민은 여기서 잠시 멈칫하게 된다. 카드도 없고, 숨겨둔 돈도 없다면? 다른 대책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빌린다거나, 다음 달 월급을 가불받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이런 대책마저 없다면,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지름신은 다음 기회에 영접하기로 하고, 잠시 눈물을 닦는다.
돈이 있든 없든, 카드가 있든 없든, 또 다른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이 소비를 누군가 구박할 사람이 있는가?' 배우자나 부모님의 잔소리가 자동 음성 지원된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들켰을 때의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마지막 관문은 '이 유혹을 무시할 수 있는가?'이다. 사실 여기서 'YES'라고 답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여기까지 고민했다는 것 자체가 'NO'에 가깝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가끔은 초인적인 의지력으로 유혹을 뿌리칠 때도 있다. 그럴 땐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된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지른다' 혹은 '참는다'의 결론에 도달한다. 지름신을 영접하는 과정은 이렇게나 복잡하고 때로는 처절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살아가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인 것을. 다음번 지름신 강림 때도 나는 아마 이 순서도를 머릿속에 그리며 또 한 번 고뇌하고 있겠지. 그리고 아마... 또 지르고 있겠지? 뭐, 인생 뭐 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