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개발자 이야기 #15 모두가 블랙(기업과 개인) - 2/3
부러진 개발자 이야기 #15 모두가 블랙(기업과 개인) - 2/3
※ 이야기 전개상 존대는 사용하지 않으며, 법인명과 인물명은 전원 일부가명 처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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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일은 앞서 제온디지털(주)로부터 받은 서방항공사 홈페이지의 디버깅, 기능수정, 이미지 수정 일을 끝내고는 '서방항공 승무원 지원/선발 웹프로그램' 일감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3월 말에 이수연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조금 더 기달려달라는 말에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2주가 지나버린 4월 초가 넘어가도록 계약 소식이 없자, 짜증이 난 노승일은 이수연에게 전화를 걸어 제온시스템(주)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였으나 이수연은 더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하였다.
노승일: '아으... 영 피곤하네. 대기시간만 줄창 나가고 다른 일을 못 하잖아...'
첫 작업이 끝나고 1개월이 소비된 2004년 4월 말 이수연으로부터 비관적인 전화를 받게 되었다.
서방항공에서 제온시스템(주)에게 승무원 지원/선발 웹프로그램은 진행하지 않겠다는 소식을 전달 받았다는 것이다.
노승일은 차라리 잘됐다 싶어서 시간소비 때문에 손실이 너무 많으니 다른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이수연에게 계속 말하였으나 이수연은 제온시스템(주)과 얘기를 해보겠다고 또 고집을 부렸다.
노승일: '도대체 왜 이렇게 제온시스템(주)에 매달리는 거야???'
그리고 5월이 된 후, 이수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수연: '승일씨! 하기로 했어요.', '계약하러 오래요!'
노승일: '아... 지금 대기기간이 거의 1개월 넘게 지났는데요.', '이건 손실이 너무 커요.', '이번에도 계약 안되면 저는 포기하고 그냥 다른 일 할게요.'
이수연: '네 걱정마세요. 이번엔 확실해요.'
노승일: '아음... 그럼 빨리 끝내도록 하죠.'
이수연: '네 근데, 금액이 200만원으로 줄었어요. 기간은 보름이 아니라 12일요.'
노승일은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노승일: '네에????? 아니, 이건...', '처음에는 다 해서 600이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일을 120 + x로 쪼개서 딜레이 시켜버리더니, 남은 x는 기간도 12일로 줄이고 금액까지 480이 아닌 200으로 줄여요???'
이수연: '아유... 이번 일은 좀 꼬였는데 그냥 하자구요. 다른 일도 받을 것 같아요.'
노승일: '그 정도 금액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스토리보드는 나와 있대요?'
이수연: '스토리보드는 없는데... 그냥 일반적인 게시판식 지원/선발 형식으로 우리가 알아서 하면 될 것 같아요.'
노승일: '일반적인 게시판식???? 우리가 알아서??', '게시판식으로 조금 바꿔서 되면 소나 고양이나 다 하죠.', '승무원 지원/선발 웹프로그램은 90%가 프로그램들이라 공수 많이 들어가요.', '제가 이미 스포츠마사지 구인/구직을 해봤는데, 그런 작은 것들도 화면 하나에 입력폼 값이 정말 많이 들어가요.', '게다가 이런 건 업무용 시스템이라 로직이 꽤 들어가기 때문에 단가도 좀 더 높아야 된다구요.'
이수연: '최대한 간단하게 하면 된대요.', '그리고 어차피 1회성 이벤트예요.'
노승일: '간단하게요??', '참 그런 말이 많네요. 이 건 말고도 지금까지 많이 받아 해봤지만 단순하게 해달라, 간단하게 해달라, 별 거 없다 해놓고는 나중에 가서 추가요구를 왕창 내던데요.', '항공사 생각도 제온시스템(주)와 같을까요? 제온시스템(주) 대표이사라는 사람 아무 생각 없는 것 같던데요?'
이수연: '이번만 믿어보세요. 다른 일도 받을 것 같아요.'
노승일: '스토리보드가 없으니 화면기획이랑 설계도 해야 되고, 테이블 설정도 해야 하고, 관리자 페이지도 해야 되네요.', 'S/W는 1회성 이벤트든 100만회성이든 결국 돼야 할 건 다 되어야 하는 건데...'
이수연: '최대한 간단하게 하겠다고 할게요. 어려운 거 다 쳐낼게요.'
노승일: '아휴...', '항공사에서 승무원 지원신청 들어온 자료를 조회할 관리자 페이지도 생각해야 되네요.', '제 생각에는 분명히 진행상황 보기, 관리자에서 합격, 불합격도 처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할 거고, 윗분들에게 보내야 하니 프린트 출력 기능도 넣어달라고 할 것 같은데요.'
이수연: '아이~ 제가 얘기를 잘 해볼게요.', '걱정 마세요.'
노승일: '에휴... 저는 가격도 마음에 안 드네요. 둘이서 12일 일하고 200이면 얼마 되지도 않는데요.'
이수연: '서방항공에서 안 하겠다는 걸 제온시스템(주) 측에서 하기로 해놓고 안 하면 손실을 어쩌냐고 강하게 항의해서 하기로 했대요.', '그러니까 이번 것만 해줍시다.'
노승일: '그럼 그냥 엎으시지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이런 건 그냥 안 하는 게 깨끗해요.', '지금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요...', '지금 우리 제온시스템(주)나 서방항공사로부터 속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서방항공사에서는 제대로 600이나 그 이상에 내려줬는데, 제온시스템(주)가 중간에서 다 받아먹고는 우리에게는 200에 받았다고 속이는 것 같은데요?'
이수연: '그렇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 아니예요.'
노승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속는 거 맞는 거 같아요.', '지금 상대가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네요.', '그냥 계약하지 마세요.', '지나간 시간 손실은 어쩔 수 없으니, 저는 지금부터라도 다른 일자리 알아볼게요.'
이수연: '아이~ 승일씨이~~ 이번 건만 하자니까요!'
노승일: '만약 항공사든 제온시스템(주)든 우리를 속이는 게 아니라면 더 심각한거 같아요.', '이런 건 우리가 해주고 절 받아야 되는데요...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가 잘 해주고도 되려 욕만 먹게 생겼어요.', '서방항공사는 이 건 포기하고 그냥 잡한국 이용하거나 수기식으로 공채 내라고 해요.'
이수연: '알았어요. 알았어요. 이번만 하고 끝내요. 이번 건은 어쩔 수 없이 해야 돼요.', '어렵게 가져왔는데 안하면 제가 뭐가 돼요?'
노승일: '다른 프로그래머라 하시면 되겠네요. 다른 아시는 프로그래머 없어요?'
이수연: '합시다아~ 이번만요오~'
노승일: '에휴...'
이수연: '한 번만!! 이것만 마무리 해주세요~!', '이건 어떻게든 해야 돼요!'
노승일: '...', '아이고...',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노승일은 이제 이수연과 함께 뭘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노승일은 WHAT'SCOM 재직시절이던 2002년에 이미 투잡으로 스포츠마사지 구인/구직 웹사이트의 웹프로그램 부분을 120만원을 받고 한 달 내내 힘들게 일해서 잡한국 심플버전으로 만들어준 기억 때문에 몹시 걱정이 되었다.
해당 스포츠마사지 구인/구직 웹사이트는 본래 컨설턴트라는 사람이 300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웹디자이너에게 맡겼는데, 웹디자이너가 180만원을 가져가고, 노승일이 120만원을 가졌갔다.
그리고 그 컨설턴트는 웹사이트가 흥하면서 광고로 돈을 벌더니, 컨설턴트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사업체를 설립하고 고용을 일으켜서 현재도 운영하고 있다.
개인은 운과 자기 아이디어, 노력에 따라 언제든지 기업인이 될 수 있기에, 개인을 특별히 사업체보다 낮추어 보거나 대접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사업체도 처음부터 사업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개인이 자기가 가진 아이디어와 기술로 자본을 투입하여 부가가치를 만들어 설립하고, 시장성이 확인되면 그 후에 자본을 모아 키우는 것이다.
개인이 사업체의 소모품으로 탄압받는 것을 당연시 한다면 신생사업체도 발생하지 않고 기성사업체들만 존재하여 배를 불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기성사업체들은 경쟁사업체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경쟁'인데, '경쟁'을 막을 수만 있다면 시장의 돈은 모두 독점하는 기성사업체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성사업체들은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개인들이 신규 사업체를 창업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자기 사업체의 살을 찌우는 데에 희생되는 법률적,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엄청난 자금을 지불하며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노승일은 당일 즉시 2시간을 소비하여 역삼동 제온시스템(주)로 방문하였고, 이수연이 먼저 와 있었다.
노승일은 이미 계약을 하러 오면서 촉박한 일정 문제 때문에 '서방항공 승무원 지원/선발 웹프로그램'의 예상 UI 설계를 뇌 속에서 돌리고 있었다.
대표이사는 여전히 잠을 자다 일어났는지 얼굴이 부시시했다.
대표: '아~ 서방항공 쪽에서 일을 안 한다고 했는데, 제가 하기로 해놓고 안 하는 게 어디 있냐고 강하게 항의해서 겨우 하긴 했습니다.'
이수연: '아~ 다행이네요.'
노승일: ('그냥 안 한다고 하지, 으휴...'), ('그런데 이번에는 대표 입에서 입냄새가 안 나네?')
이수연: '승일씨, 이번에는 제가 계약을 할게요.'
노승일: ('먼저는 나더러 하라더니 이번엔 뭐지?'), '뭐,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나와서 이수연씨와 얘기를 잠깐 나누었다.
노승일: '계약하긴 했는데, 기간에 비해 솔직히 짜도 너무 짜네요. 그리고 이건 난이도가 꽤 있어서 프로그래머, 웹디자이너 두 사람 기준으로 3주에 600 준다고 해도 할 까 말까인데...'
이수연: '최대한 간단하게 갈게요. 간단하게.'
노승일: '아흐!!! 저 지금 밤 새면서 개발할 판인데요...', '해 놓고도 분명히 추가사항도 나올 거구요~!!!'
이수연: '아유~ 승일씨 좋게 생각합니다. 다음 건을 생각해야죠.'
노승일: '제가 이 일 많이 해봤지만 지금까지 한두 번에 끝난 적은 없는데요. 많이 가면 일곱 번도 넘게 추가 요구사항 나오던데요.'
그리고 노승일은 이수연에게 시간이 없다며 작업 준비를 하겠다고 황급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노승일은 돌아오면서, 온통 머릿속에 서방항공 승무원 지원/선발 웹프로그램 화면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노승일: '아으~ 시간없다. 시간없어.', '에이 x박... 짜증나!!!'
노승일은 짜증이 난 상태로 마을버스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와, 라면 한 개 뜨겁게 끓여서 고추가루 팍팍 쳐서 김치 많이 먹고 땀에 젖은 머리와 얼굴을 찬물로 세수하고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레이아웃부터 잡고, 신청서 작성화면, 수정화면, 삭제화면, 진행조회화면 만들고, 백엔드에 신청서 리스트, 상세조회 화면 정도만 투박하게 만들어 놓았다.
노승일: '아흐... 이런 걸 그나마 미리 해봐서 다행이다.안 그랬으면 빠싹 앉아서 하루 14시간씩 1개월 내내 해야 되는 일인데.'
이전에 개발해놨던 스포츠마사지사 구인/구직사이트 스포츠마사지클럽.co.kr의 양식과 잡한국 화면양식을 참조해서 기초화면을 만들어 놓고 겨우 새벽 1시 즈음에 취침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7시에 일어나서 세수 후 바로 작업을 개시하였다.
노승일: '일단 소나 고양이나 다 들어올 수 있는 공개된 지원양식이 필요하고... 사진도 올려야 되고,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 입력,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 동적으로 입력해야 되고, 자격증 정보랑 이력사항도 마찬가지고...'
, '관리자 페이지도 문제잖아... 서방항공이면 이걸 이용해서 분명히 직원 몇 명이 접수받고 높은 컴맹 노인양반들에게 출력해서 가져갈텐데...', '설마 관리자 화면에서 뭘 컨트롤 하겠다고 하진 않겠지? 일단 리스트와 상세보기만 보여주자.'
'아무리 생각해도 가격이 말이 안된다. 큰 손해다. 큰 손해야.'
그렇게 아침7시30분~새벽1시까지 하루 14시간씩 일을 하는데, 고등학교 절친 장우선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장우선: '야~ 승일아~ 런이지 게임에 들어와라. 같이 사냥 나가자.'
노승일: '아, 나 지금 알바 때문에 바빠.'
장우선: '있다가 밤에 하면 되지? 밤 9시에 들어올래? 그 시간에 사냥할 몹들이 많아.'
노승일: '아니 그 시간에도 일해야 된다니까.', '야 근데, 먼저 면접 본다고 게시판 만들어달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면접 통과는 됐어?'
장우선: '아니, 합격되면 연락 준대. 기다리라는데?'
노승일: '아휴, 몇 주가 지났는데 기다리냐? 다른 데 면접을 또 보던지, 아니면 좀 더 프로그램 공부를 하든지.', '너 지금 상태로는 취업해도 문제라니까.'
장우선: '취업은 하면 되지', '어려운 건 네가 좀 해주면 되잖아?'
노승일: '내가 좀 해주면 되잖아???', '에휴...'
장우선: '먼저 필드가서 사냥하고 있을게. 있다가 들어와라.'
노승일: '아우... 알바 한다니까. 이번에는 안돼, 너 혼자 해.', '야, 너 지금이라도 재입학해라. 5년 아직 안 지났지?'
장우선: '그 얘기 그만하고,', '있다가 들어와~'
전화를 끊고나니 노승일은 일 때문에 자기 소중한 여가시간이 침해받는 사실에 대하여 짜증이 더 밀려왔고, 친구 장우선 마저도 노승일 말을 개똥으로 여기고 무시하니 더 답답하였다.
노승일은 이미 2004년 2월에 신영수와 여동생 신영순, 세 명이 용평스키장을 다녀온 후로 정신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신영수가 1억2천 주고 마련한 일산 주엽역의 24평 아파트와 중고세피아2, 그리고 신영수의 여동생 신영순은 지방대 졸업과 동시에 강원도 소재 제약회사에 취업하여 회사로부터 25평 새 아파트를 개인 숙소로 배정받고, 모든 시설과 케이블TV까지 복지혜택으로 받아 거주하며, 스키장 시즌권을 구매하여 매주 스키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노승일은 신영수와 여동생 신영순과의 격차감을 엄청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생전 처음 가본 스키장은 너무 좋았고 보드를 타고나면 온 몸과 다리에 열이 나고 다리가 뻐근해지면서 상당한 활력이 생기고 운동이 되는 것을 느꼈다.
왼쪽 팔에 1원짜리, 목에 100원짜리 동전만한 아토피가 있던 노승일은 스키장에서 보드를 타면서 운동도 하고 여가를 즐기고 싶었는데, 문제는 시간도 없고 돈은 더 없었다.
노승일: '도대체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우선이 이자식은 팔자도 좋네.'
노승일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며칠 간 일을 하는데, 작성폼을 승무원 지원자 사진 파일 업로드 문제 때문에 Multipart프로토콜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분기탱천하였다.
노승일: '아 맞다! JSP 파일 업로드!', 'PHP에서는 그냥 되지만 ASP에서는 DEXTUploader 컴포넌트 별도로 구매하는데, 내가 만든 FormDataUploader 빈즈도 당연히 돈 받아야 되는 거 아냐?', '일반 게시물 작성도 아니고 이거 견적이 정말 잘못됐는데...'
노승일: 'X발놈들, 억 단위 OC4J, 오라클9i 세트로 구매해 설치해서 신규 프로젝트 해놓고, 잠까지 아껴가며 디버깅,유지보수하고 승무원 지원/선발 웹프로그램 개발하는 우리한테는 놀부처럼 아끼고 있네. 항공사 홈페이지도 ERP 업무 링크만 있고, 예약기능도 없는 홍보페이지나 다름 없는데, MySQL에 jBoss나 설치하고 돈 아껴서 인건비나 제대로 쳐주지. 에이...'
노승일은 당시에 이런 불평을 하였는데, 2008년도에 가서야 기업들이 인건비에 쓸 돈은 없어도 현물 사들일 돈은 남아도는 이유에 대하여 제대로 알게 되었다.
노승일: '일단, 성명, 사진, 주소, 우편번호, 이메일, 성별, 혼인여부, 유선전화, 무선전화, 주민번호, 생년월일, 공인교육 내역, 자격증, 수상경력, 이력항목, 자기소개 부분....'
노승일: '잠깐... 이 인간들 분명히 지원자들의 진행사항 조회가 가능하게 해달라고 할 거야... 안 그러면 지원자들이 수시로 수십회씩 전화해서 합격여부 물어보겠지. 일단 진행사항, 합격여부 등 예비로 필드 몇 개 더 만들어 두자...'
아침 7시부터 새벽1시까지 하루 16시간 가량 미친듯이 환경설정하고 화면설계 작업해서 3~4일째 즈음 화면 이수연에게 보내주자, 이수연이 다시 제온시스템(주)으로 보냈고 다음 날 즈음에 나에게 답신을 주었다.
이수연: '노승일씨, 전신 사진도 여러 장 추가할 수 있게 해달래요. 3~6장 정도 가능하게요.', '그리고 이것도 추가하고, 저것도 추가하고... 블라블라~~'
노승일: '????', '아이... 그 봐요...', '결국엔 다 해달라잖아요...', '지금 8일 남았는데 어떻게 이러면서 일해요...'
이수연: '아이~ 기왕 시작한 거 다 하자구요.', '계약했으니 하긴 해야죠.'
노승일: '아호.. 이런 걸 200만원에...', '보내준 신청서 양식 보셨죠? 내용이 좀 많아요? 보이는 필드만 30개 정도 돼요.', '사진 올라가는 부분 보이죠? 이건 파일업로드 처리 때문에 일반 웹프로그램처럼 처리하면 안된다구요. 시간이 배로 걸린다구요.', '거기다 동적으로 늘어나고 줄어들고, 그거 원래는 화면 하나만 순수 개발작업 공수 하루 8시간 2~3일 널널하게 계산하고 컨펌 받아가며 해야되는 거라구요~~!!'
노승일은 이제 완전히 폭발임계점을 넘었기에 이수연에게 따지고 들었다.
이수연: '아이 참!~! 알았다구요!', '좀 참으면서 해주세요.'
노승일: '아휴...', '수연씨 이런 건 그냥 안 하는 게 답이예요.'
이수연: '시작했으니 이 건만 하구요~~'
노승일: '아으... 이건 정말 아닌데... 완전히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건데...'
결국 노승일은 전신 사진 동적 등록/수정/삭제를 해주고, 몇 가지 필드를 추가해 주었다.
노승일: '그런데 전신사진은 왜 요구하지? 승무원은 몸매도 보나보네?'
이후로도 몇 번의 추가 요구사항과 변경사항이 두세 번 더 들어왔고, 노승일은 이것만 하고 안 한다는 생각으로 한숨만 내쉬며 해 주었다.
그리고 착수한 지 12일 겨우 아슬아슬하게 납품이 이루어졌고, 이틀인가 후에 서방항공사는 온라인 승무원 지원/선발 이벤트를 개시하였다.
노승일은 그 사이에 일단 숨 돌리고 밀린 잠 좀 많이 잔 뒤에 일어나 친구 장우선과 런이지 게임을 하려는데...
노승일: '아씨... 생각해보니 그럼 내가 모니터링도 해줘야 되잖아? 젠장.. 12일 짜리가 아니라 20일짜리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 바짝 앉아서 대기하며 모니터링을 했다.
노승일: '어디... 자료 좀 확인해볼까?', '???', '지원자가 하두리캠을 찍어서 올려????', '프로필 내용이... 제가 어릴 적 꿈이 스튜어디스가 되는 게 꿈이었구요.... ^___^ 부족한 게 많지만.. 뽑아주시면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서... 최선을 다하는 승무원...'
노승일: '뭐야 이건?????'
어디서 알고 들어오는지, 사진과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종합하여 보면 테이블 위에서 탬버린 좀 쳐봤을 여자, 학창 시절에 면도날 좀 씹었을 것 같던 이쁘장한 여자들의 지원서가 하두리캠 등으로 급조한 사진과 함께 수십 명씩 들어오고 있었다.
부처님도 고개를 흔들 정도로 정신적, 스펙상으로 너무 심각하게 하자있는 지원자들이 97%, 그나마 관련학과 또는 관련 자격증, 관련 교육, 또는 관련 업무 유경험으로 지원하는 정상적인 지원자들은 3%에 불과하였다.
애교형에서 읍소형까지 별의 별 지원서류가 다 들어왔다.
3%들 중에서도 1% 정말 굉장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인서울 4년제 대학 졸업, 실제 투입과 거의 동일한 머리스타일의 반명함판 사진, 공인영어성적, 어학연수 경험, 승무원 관련 교육 수료증 등...
노승일: '아...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그런데 내 인생은 왜 이럴까... 그럼 나도 97%에 해당되는 거야???? 우울한데???'
어쨌든 노승일은 혹시라도 프로그램 오류가 생기지 않을지, 특히 필드에 데이터는 정상적으로 들어가는지, 파일업로드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면밀하게 확인을 하고 있었다.
노승일: '필드에 데이터 안 들어가거나 파일업로드 안되면 대형사고인데... 어휴...', '사진 잘 업로드 되고 있고, 별다른 오류 없고, 필드에 값도 잘 들어가네.', '에휴 다행이다.이제 돈만 받으면 되는군.'
그리고는 로그가 올라오는 게 뜸해지자, 어느 정도 상황이 끝났다는 생각에 돈 받을 생각을 하고 장우선과 게임을 하는데... 게임을 하면서 노승일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가만... 그러고보니 이런 도급계약은 문제 생기면 손해배상 운운할텐데??? 그럼 모니터링 인원 고용해야 하고, 사업책임비까지 합쳐서 1천은 받아야 되는 일 아닌가???'
그런데 다음 날 즈음인가 이수연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이수연: '항공사에서 관리자 이용 중인데요. 상세내역에서 직접 신청자 프로필 수정 가능하게 해달라고 주문이 왔구요. 그리고 진행상황이랑 합격/불합격도 설정할 수 있게 달래요.'
노승일: '아우... 이제는 더이상 못해주겠어요.', '사실 도급 기성 명세서도 없이 계약했는데 왜 자꾸 뭘 새로 요구한대요?', '싸게 했으면 싼 만큼 부족하고 불편하게 골치아프면서 이용해야죠.', '간단하게 한다면서요? 이게 간단한 거예요?'
이수연: '관리자만 좀 해주세요. 서방항공사 직원들이 관리자 화면에서 리스트로 보면서 수정해야 된대요.'
노승일: '관리자에서 지원자 지원서 수정은 안되니까, 승무원 지원화면으로 들어간 후 지원자 주민번호 입력해 나온 기신청내역 수정하라고 하세요.', '에휴 합격/불합격이랑 진행상황은 해드릴게요. 그네들이 그렇게 나올 줄 알고 필드 하나 만들어 놨으니까 2~3시간만 좀 기다리세요.'
이수연: '이것만 좀 해주세요. 이제 거의 다 끝났잖아요?'
노승일: '하아... 수연씨, 결국엔 다 해달라는 거네요. 이 인간들, 안 한다고 돈 아끼더니, 결국엔 항공사 직원들까지 동원해서 조직적으로 이벤트 열고 있잖아요??', '전문개발기업에 맡겨서 몇 천 지급해야 할 일을 개인 둘에게 200에 맡겼다구요.'
이수연: '아유, 이제 진짜 끝! 이게 마지막이예요.'
노승일은 이미 포기상태다.
스토리보드도 없고, 기능상세내역 견적서도 없이 타이틀만 던져놓은 도급계약이 최악으로 흘러갈 것에 대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을 하고 있어서 손해 생각만 날 뿐 기분은 그저 그랬다.
'외뢰자들은 4천원짜리 백반 가격을 내고는 30만원짜리 호텔코스요리를 요구한다'
노승일의 뇌 속에는 이미 법칙이 새겨져 있었다.
결국엔 다 해줘야 한다.
20년 전, 10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고, 심지어 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건은 절대 공짜로 더 못 가져가는데, 사람의 시간과, 지식, 노동력은 1+100처럼 1 내면 100은 전부 공짜인 것이다.
프론트- 승무원 입사지원(반명함판 사진 업로드, 생년월일, 신장, 체중, 전화번호, 개인정보, 동적 정보 입력.학력사항, 자격증 정보, 이력사항 등. 사진 5개까지 동적 업로드) 및 지원정보 수정
백엔드 관리-지원 목록, 지원상세보기, 지원정보 수정, 지원정보 폐기, 지원자 예비합격/서류합격/면접합격 등
웹프로그램으로 시작해서 12일 만에 후줄근한 입사지원 시스템 하나가 만들어졌다.
노승일은 승무원 지원/선발 이벤트가 언제 끝났는지 소식을 알 수도 없었다.
노승일: '젠장, 이벤트가 어떻게 돼가고 있는거야? 사업참여 당사자에게 일정도 안 알려주고... 에휴... 답답해...'
노승일: '아 근데 돈이 문제네...??? 200만원이 들어오면 수연씨와 나눠야 되잖아? 수연씨가 설마 반만 보내줄까???', '아니 그럴 수도 있겠는데????'
노승일은 불안했다.
업무량으로 따지면 이번 건은 노승일이 90%, 이수연이 10%인데, 노승일에게 적어도 60% 주고, 이수연이 40%만 먹겠지 싶은 기대감과 이미 이전에 50:50으로 나눈 선례의 불안감이 마음 속에서 경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후에 이수연으로부터 돈이 들어왔다는 전화가 왔는데, 노승일이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이수연: '노승일씨? 돈 들어왔어요~ 200만원요~'
노승일: '에휴... 잘 끝났나보네요.'
이수연: '여기서 100만원 보내드릴게요.'
노승일: ('에휴... 역시나...'), '100만원요?'
이수연: '네, 왜요?'
노승일: '아휴... 으...'
이수연: '왜요????'
노승일: '아니... 승무원 계약 건은 이게 지금...', '제가 너무 힘들었는데...'
이수연: '...'
노승일: '에휴... 그게...'
이수연: '...', '그래서 얼마 달라구요?'
노승일: '어휴...'
이수연: '그래서 얼마 보내주면 되.냐.구.요!'
노승일: '이수연씨, 지금 이 건은 프로그램 양이 너무 많지 않아요?'
이수연: '......'
노승일: '처음부터 금액도 너무 적었구요... 일정도 말이 안되고... 저는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구요.'
이수연: '그래서 얼마 보내주라구요?'
노승일: '아니, 일에 대한 계산을 좀 해보자니까요.', '적어도 계산은 해봐야 되잖아요.'
이수연: '110만원 보내줄게요. 됐!죠?!'
노승일: '으휴...'
이수연이 화가 많이 났는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노승일은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쳐다보다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아니 x발, 이게 지금 내가 잘못한거야???? 환장하네... 아으...'라고 말하였다.

<110만원이 들어왔다.>
노승일이 화면기획, 설계, 프로그램을 개발, 태깅하고, 이수연은 노승일로부터 완성된 기획화면을 받아 화면 3종(기신청 주민번호 인증화면, 신청서 화면, 리스트 화면)을 디자인하여 노승일에게 보내주었다.
그리고는 이수연으로부터 2005년 말까지 거의 1년 9개월 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110만원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2004년 6월 중순 즈음 WHAT'SCOM(주) 시절 함께 일하던 직장동료 겸 알고 지내던 동생 정세욱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세욱은 행정직 공무원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군대 징집을 앞두고 갑자기 탈모 때문에 대머리가 되어 보충역을 받고는 모자를 쓰고 다니며 발모시켜준다는 한약을 먹으면서 WHAT'SCOM(주)에 입사하였다.
그런데 WHAT'SCOM(주) 재직시절 이 친구와의 웃기는 일화가 있다.
노승일: '아버지가 행정직 공무원이신데, 군대 안가도 뭐라고 안 해요?'
정세욱: '우리 아빠가요? 아뇨.'
노승일: '아버지가 공무원이면 더 다녀오라고 할 것 같아서요.'
정세욱: '그런 거 없던데요.', '"아빠? 나 그냥 군대 갈까?"'라고 물었더니 '거긴 뭐하러 가냐', '가봐야 좋을 것도 없는데.'라고 말하던데요.
노승일: '행정직 공무원이 자녀에게 그렇게 말해도 되나요?'
정세욱: '안될 건 뭐 있는데요?', '공무원이나 일반인이나 별 차이 없어요.'
노승일: '그래요?', '저는 공무원이 나랏일 하는 사람이라 일반인보다 좀 더 달라보일 줄 알았죠.'
정세욱: '아유~! 그런 거 없어요~'
그리고 정세욱은 WHAT'SCOM(주) 퇴직 후 자발적 단가 후려치기로 업계에 소문난 PAZZYMAKER라는 웹에이전시를 다니다가, 첼로야 화장품 온라인 쇼핑몰을 다니고 있었다.
(참고로 첼로야 화장품 온라인 쇼핑몰은 2007년 9월에 XK 오픈마켓 뉴욕5번가에 매각되었다.)
어쨌든 정세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몹시 다급하였다.
정세욱: '형! 저 지금 급해요!', '도와주세요!!'
노승일: '예?? 뭘요??'
정세욱: '제 여자친구랑 온라인 옷 쇼핑몰 하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도와주세요!!'
노승일: '저 지금 생활비도 없어서 뭘 못해요.', '일단 일자리 구하고 나중에 도와드릴게요.'
정세욱: '형~ 지금 해야 돼요!! 지금 당장 도와주세요!'
노승일: '지금 제 사정도 안 좋아서... 누구를 도와줄 팔자가 안되는데요.', '통장에 200만원도 안 들어있어요.'
정세욱: '형, 저 5천원 있어요! 5천원 드릴게요!! 해주세요!'
노승일: '???', '에휴..., 전 돈 없어서 걸어다니고 라면 끓여먹는데요.'
정세욱: '아! 으..', '형!! 그래도 해줘요.'
노승일: '사정이 안된다니까요... 돈 좀 아껴서 그냥 패키지 하나 사서 하세요. 그게 더 빨라요. 요새 150만원이면 패키지 사던데 제가 해주는 것보다 그게 더 싸게 먹히겠어요.'
정세욱: '해줘! 해줘!! 해달라고!!'
노승일은 정세욱의 태도가 뭔가 거칠어지는 것을 감지하였다.
노승일: '에휴... 왜 그래요?', '일단 나중에 또 통화를 하죠.'
정세욱: '전화 끊지마! 안돼!'
노승일: '전화 끊을게요. 나중에 통화해요.'
정세욱: '여보세요? 여보세요? 해줘!!'
노승일: '나중에 통화해요.'
정세욱: '아씨!! 야!! 야!'
노승일이 전화를 끊으려고 휴대폰을 내리는데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정세욱: '야이! 시발롬아!! 해달라고!! 야!'
노승일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노승일은 고민했다.
노승일: '정세욱이 얘는 시월드 들어가보니 여자친구랑 남이섬이랑 제주도 가서 렌터카 빌려서 놀러갔다온 사진이 잔뜩 있던데...', '아름다운 장소, 비싸고 좋은 음식들...', '누가 누굴 도와달라는 거야?'
이 통화를 마지막으로 정세욱과 노승일 사이에 서로 통화가 오가는 일은 없었다.
사실 노승일은 2014년 2월에 정세욱의 차를 함께 타고 스키장을 다녀온 이후로 정세욱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경기도 이천 광주 백마터널 부근, 서울 방향으로 주행중이던 정세욱의 차 밑으로 도로에 방치된 빈 우유박스가 끼어서 잠시 갓길에 정차하였는데, 정세욱이 나와서 보더니 노승일더러 자동차 하부에 낀 우유박스를 빼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때 노승일은 정세욱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던지는 인물이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노승일은 만약 정세욱의 의류 온라인 쇼핑몰 부탁을 함부로 들어줬다간 호된 갑질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계하고 있었다.
정세욱은 이후 몇 개월 뒤에 여자친구와 함께 shesleather라는 의류쇼핑몰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대표는 그의 아버지로 되어 있는 듯 하였다.
아는 여동생을 모델로 기용하여 6년 정도 사이트를 운영하다 2010년 즈음 사업을 접고 몇 년 후에 여자친구와 결혼하였다.
그는 아마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노승일은 이미 정세욱 사건 때부터 상대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면 형아우로 부르는 관계도 소용없고, 아무리 마음을 써준다 한들 상대는 전혀 고마워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의문이 생겼고,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러면서 노승일은 인생을 갉아먹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잡다한 인간관계를 계속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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