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개발자 이야기 #7 블랙기업 프리랜서 2탄 - 야만적인 민속문화 첫 번째 1/2
부러진 개발자 이야기 #7 블랙기업 프리랜서 2탄 - 야만적인 민속문화 첫번째 1/2
※ 이야기 전개상 존대는 사용하지 않으며, 법인명과 인물명은 전원 일부가명 처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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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일은 여전히 카드값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먼저도 기술했지만 2003년 6월 27일 동생에게 4만원을 빌려서 카드연체료 16,536원을 겨우 틀어막지 않았는가?
다른 계좌에 몇 천원이 있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누룽지 긁듯 박박 긁어 합쳐가지고 만원 단위로 만들어서 출금을 해 차비로 사용하곤 했었다.
이미 카드값을 틀어막은 2003년 6월 27일 당일날부터 계속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장기SI나 지방 SI만 줄창 나오지 감당할 수 있는 일자리가 안 나온다.
그러다가 겨우 알바자리 하나를 찾았다.
'선릉역 선생천국상호저축은행 홈페이지 설치 및 게시판 개발 알바?? 1주일 일하고 60만원? 저축은행이면 SI인데?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다.' 해보자.
[첫 방문. 2003년 7월 초순]
입사지원을 하자 전화가 왔다. 전화 통화 후 2003년 7월 초순에 (주)애드물결 인터렉티브 사무실로 방문하기로 약속하였다.
청담? 강남구청역?에 도착하기 몇 정거장 전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자, 인상이 좋아보이는 원용운이라는 노승일 또래의 선생천국상호저축은행 홈페이지 담당자가 마중을 나왔다.
이건 기억이 확실치 않은데, 그 사람이 바로 선릉역으로 오라고 했다가 뭐가 안 된 것이 확인돼서 거기서 (주)애드물결 인터렉티브로 갔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주)애드물결 인터렉티브로 방문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그 사람과 (주)애드물결 인터렉티브 사무실로 향하였는데, 단독주택 밀집지역 이면도로로 들어서더니, 어떤 단독주택 문을 열고 들어섰다.
노승일: '엥? 이 단독주택이 사무실이라고?'
당시에 회사 소재지에 따라 영업 대접이 달라졌기에 강남 단독주택을 임차하여 사업하는 회사가 많았다.
마당을 통과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원용운사원은 '으이크 자나보나~, 아, 깨워야 되나?'라고 거실로 들어서서 살폈는데,
사장님이 밤샘작업을 했는지, 소파에서 완전히 골아 떨어졌기에, 노승일은 '어차피 사장님 없으셔도 작업은 할 수 있으니 그냥 합시다.'라고 말하자, 원용운씨가 2층으로 안내하였다.
2층의 가장 큰 방은 회의실로 사용하는데, 상주직원들이 7~9명 정도 있었고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노승일은 속으로 '훔.. 디자인 위주 웹에이전시인가? 그런데 개발자는 전혀 없나? 결국엔 내가 혼자 다 해결해야 되네?'라고 생각하였다.
이미 이때부터 웹에이전시들은 닷컴버블 이후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되었고, 생존을 위하여 웹개발자들 다 내보내고 긴축하고 있었다.
노승일은 다른 작은 빈 방에 들어가서 세팅을 하고 작업을 준비하는데, 저축은행 홈페이지 소스와 게시판 디자인이 도착했고, 태깅과 소스복사가 좀 있었을 뿐 일은 순조로웠다.
그리고 직원들이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박을 잘라 나눠주기에 잘 얻어먹었다.
작업이 어느 정도 되고, 원용운사원과 얘기를 하는데,
원용운: '저희는 (주)새으뜸정보기술 일을 많이 받아서 하는데요. 들어본 적 있으세요?'
노승일: '아뇨, 들어본 적 없는데요.'
원용운: '그렇군요. 그런데, 얼마 전에 먼저 했던 새동네금고는 4,000만원인가? 4,600만원인가에 일을 받았다던데요, 선생천국상호저축은행은 가격이 2천 몇 백만원 밖에 안됐다고 하네요. 같은 일인데 단가차이가 많이 나죠.'
노승일: '히이~~~~ 그렇게 단가차이가 많이 나나요?'
원용운: '1~2년 전만 해도 단가가 좋았었는데, 지금은 별로라고 합니다.'
노승일: '그런데 SI가 갑질 심하다는데 갑질 없나요?'
원용운: '새동네금고도 일을 따고나서, 계약축하 회식자리에서 은행원 비아냥이 매우 심해서 웹에이전시 임원이 상대 얼굴에 대고 '이제 그만 좀 하시죠?'라고 노려보며 말했다는데, 선생천국저축은행 홈페이지 개발도 있지 않을까 좀 긴장이 되네요. 뭐 높으신 분들 이야기니 우리는 상관 없겠죠.'
노승일: '홈페이지 준 SI업체가 그랬다구요?'
원용운: '아뇨,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은행 담당자가 계속 비아냥댔나봐요.'
노승일: '은행 담당자가요오???'
노승일은 무척 놀랐다. 2001년 6월 ~ 2002년 12월까지 재직했던 WHAT'SCOM(주) 사장이 은행원 출신이었는데, 사람 성격은 차분했고 상대의 감정을 긁는 언행은 안했기 때문에 은행원들에 대한 인상은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초등학생 시절에 은행에 갔다가 은행 창구 누나에게 크게 윽박을 당한 적은 있지만, 그 기억은 없어졌다. 그 누나는 빨간색 원피스에 스프레이를 뿌린 장발의 라면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노승일이 부모님 심부름으로 예금을 찾으려고 출금신청을 하고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갑자기 '야!!!'라며 찢어질 듯한 날카롭고 큰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자 그 누나가 '너 진짜 정신을 엇다가 놓고 다니니!'라며 소리를 고래 고래 질러대 은행 방문객과 창구 직원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옆 직원 둘이 그 누나에게 다가와 '애가 뭘 알아? 참아...'라고 만류를 하는데, 그 누나는 '아씨! 진짜 오늘 짜증나 죽겠는데 애까지 열받게 만드네!!'라고 계속 짜증을 내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출금신청을 하고 다른 곳을 보면 은행원이 무심코 돈을 내줬다가, 출금된 돈을 다른 사람이 찰나에 훔쳐가는 경우가 있었다. 분실되면 복잡한 문제가 생기니 창구직원은 노승일에게 소리를 질러댄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노승일은 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몇 년 동안 은행이 무서워서 갈 수 없었다.
어쨌든 홈페이지 소스를 받았고, 거기서도 작업을 해서, 게시판 외에 몇 가지 기능들과 변동값을 더 추가해 넣고 홈페이지 보강작업을 완료하였다. 아마 작업이 그 날 끝난 것으로 기억이 난다. 게시판도 이미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아마 게시판에 하단 페이지링크가 없어서 그거 기능 추가하고 게시판 하나 더 추가해서 디자인에 기존 소스를 복사하고 태깅해서 테스트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홈페이지 프로그램 부분을 누가 개발했는지 구조에 대한 통찰력이 훌륭한 사람이 만들었다. 데이터는 한 곳에 모아서 기존 구조에 새로운 값만 추가하고 HTML에 세팅하면 하면 되었으니까.
원용운씨는 놀라며 예상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며, 설치까지만 해달라며 어차피 약속이니까 60만원은 다 드린다고 하였다.
오, 느낌 좋은데?
집에 오면서 생각을 하는데, (주)애드물결 인터렉티브는 단독주택에 입주해 있지만, 영업은 잘 하기에 일감은 잘 받아오는 것 같았다. 폭망한 에이전시 사업 속에서도 나름 몇 천짜리 웹개발은 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미 이전 회사 WHAT'SCOM(주)에서도 웹에이전시 업무를 경험하였지만 웹에이전시는 이제 수익성이 열악하다.
아마 (주)애드물결 인터렉티브도 웹에이전시 말고 수익선 다변화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S/W산업을 느슨하게 보고 정신줄을 놓은 노승일은 나중에 큰 대가를 치루게 된다.
이전 거래업체들은 단순히 영세하고 개인업체 같으니 양아치인데, 어느 정도 규모 되고 회사 모습 갖추면 모든 회사들이 다 깔끔하게 거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번째 방문. 2003년 7월 중순]
홈페이지 설치도 해주기로 하였으니 원용운사원을 2003년 7월 중순 어느 날 선릉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선릉역에서 만나 선생천국상호저축은행으로 들어갔는데 세상에, 거기서 '닭장'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다.
23평 아파트 안방보다 작은 방에 개발자들10여명 정도가 반바지와 반팔, 슬리퍼 차림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며 일반적인 회의 테이블에 어깨를 움츠리고 좌우 앞뒤로 다닥 다닥 붙어서 거북목으로 작업들을 하고 있었고, 노트북과 데스크탑에서 엄청나게 후덥지근한 열기가 내뿜어져 나오고 있었기에 한여름 바깥보다 더 더웠다.
이건 홀대 정도가 아니라 경시 수준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래가지고 작업이 되나?', '이 사람들 이런 일을 오래하고 만수무강할 수 있을까?', '역시 SI로 안 들어오길 잘 했다.'
지금은 없어진 보직이지만 당시에는 단순 모니터링 운영직이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화면 모니터링만 하는 직원들도 있어서 사무실마다 매우 북적댔다.
불쾌함과 안도감 등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이후 2005년도에 알게 된 사실인데, 턴키사업은 원수급자('을')가 업무장소까지도 알아서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계약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은행 시스템에 붙으려면 은행 내부에 붙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무실을 외부에 마련하여 작업하려면 보안 문제 때문에 전용선을 뚫어서 이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은행에서 보안 등 내부 규정을 들어 협조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은행에서 허락한다 하여도 그 과정까지는 엄청난 과정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부담이 되고, 정기미팅, 긴급회의, 포트 개방 등이 필요할 땐 어찌 할 셈인가? 그럴 때마다 미팅 별도로 잡고 느긋하게 시간 보내며 만날 수 있는가?
결과적으로 납기를 준수하지 못하게 되는 큰 위험성이 있었다.
기능 일부 오픈 연기하고, 내부오류는 갑이 끝까지 인정치 않는 '안정화'라는 걸 몰래 몰래 시키며 넘어가더라도, 소비자 기능 무결성과 전체 시스템 납기는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만 개발회사 입장에서 법적으로 금전적으로 이롭다.
'꼬투리 안 잡히려면 엉망이든 일부 기능이 없든 일단 납기는 무조건 지키고, 이후에 보강을 해라.'
게다가 사업이 '턴키' 방식인 만큼, 발주자('갑')은 가만히 있어도 원수급자('을')이 전부 알아서 만들어 시스템의 열쇠를 발주자('갑')에게 건내줘야 한다.
정보기술 업종 턴키는 정말 골치아픈 일이다.
어쨌든 원용운씨가 홈페이지 담당자니까, 내가 직접 하지 않고 내가 원용운씨에게 요청하면, 원용운씨가 '갑'이나 '을'에게 가서 해결해주니 일이 신속하고 편했다.
전세계적으로 피싱(Fishing)이나 트로이가 유행하기 전인 당시에는 사용자 PC를 점유하며 몰래 정보를 빼가는 ActiveX가 드물었기에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말고는 아무도 보안문제를 신경쓰지 않았다. 보안이나 규정준수는 사실 전무하였다. 대기업 오픈마켓 소스가 밖으로 나돌아다녔고, 내부 결제 로그가 이메일을 통해서 외부로 마구 돌아다녔다.
보안을 떠드는 놈은 정신이 이상한 놈으로 취급되었다.
애꾸나라에서는 양 눈 가진 사람이 비정상이다.
그러므로 '병'의 개발자에게 직접 '갑'의 운영 접근을 허락해주고 '병'이 직접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노승일은 자기 맘대로 서버에 접근해도 되나 싶어서 (주)새으뜸정보기술의 관리자에게 파일 드리면 올려주시냐고 묻자, 관리자는 자기에게 파일을 주지 말고, 시스템 접근 계정을 알려줄테니 직접 작업을 하라고 하였다.
[S/W업종의 고질병: 브로커]
자리에 앉아 작업 준비를 하면서 원용운씨와 이야기를 하는데,
노승일: '오우, 구조적으로 통찰력 있는 사람이 정석대로 만들었네요. 값만 넣으면 되니까 편하게 작업했어요.'
원용운: '아 그래요? 그런데, 이게.. 우리가 디자인을 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해주겠다고 개인사업자라며 싸게 해준다는 40대 남자에게 800?(얼마인지 기억 안 남)에 넘겼는데요.', '그런데 그 사람이 노승일씨랑 비슷한 나이의 프로그래머에게 또 넘겼더라구요.'
노승일: '???!!! 그걸 어떻게 아세요?'
원용운: '작업을 진행하면서 전화를 할때는 그 사람이 직접 받아서 처리하더니, 나중에 돈 넣어주고 나니까 전화번호 알려주면서 직접 프로그래머에게 전화를 하래요.'
노승일: '??? 아~ 한 단계 또 내린 거군요. 세상에, 이걸 또 하청 내린다구요???'
원용운: '근데 그 JSP프로그래머가 자기는 250?? 받으면서 개발할 거 거의 없는 알바라고 얘기 들었는데, 분량이 너무 많다고 '이건 원래 더 받아야 하는건데, ㅅㅂ! ㅅㅂ! 아~ ㅅㅂ!'라고 짜증을 내시더라구요.'
노승일: '음.. 250만으로 이걸 만드는 건 손해긴 하네요. 홈페이지지만 1개월 이상은 해야 할 분량인데...'
원용운: '그래서 어떻게 저떻게 되다보니...'
노승일: '그래서 게시판 개발과 설치공고를 올렸고 제가 보강과 설치 일을 맡게 된 것이군요.'
원용운: '그런 거죠.'
그 개발자는 결국 250만원 받고 600~1,000만원짜리 일을 해준 셈이다. 마무리는 완전히 안 됐으니 200정도는 뺀다셈 치자.
개발자들은 이걸 보고 문제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문제가 나올 테니까.
[이상한 Web Application Server(WAS)]
잠깐 담당자가 자리 비운 사이에 우측 노트북에서 자꾸 뭔가 올라가는 게 보였는데, 그것은 분명히 톰캣 로그였다.
노승일: '엥? 톰캣을 사용하나?'
그런데 가만 보니 톰캣 로그와 모양새나 패턴은 같은데 출력메세지가 미세하게 달랐다.
노승일: '이게 도대체 뭐지?', 'Webgain WAS인가 뭐 그건가? 아니 톰캣이 맞는 것 같은데???'
그런데 잠시 후 새으뜸정보기술 담당자가 오더니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새으뜸 담당자: 'DNS설정 이걸로 하시구요.', '계정이랑 패스워드는 이겁니다.'
작업을 시작하고 FTP를 이용하여 파일을 올리는데 50Mb도 안 되는 용량을 올리는데도 시간이 너무 느렸다.
(주)새으뜸정보기술 담당자가 필요하면 WAS를 내렸다 올려도 무방하다고 하였으니 노승일은 shutdown을 때려봤는데, 어라? 안되네?
그러자 옆의 담당자가, '아 그거 아닙니다.', 'jboot 사용하시구요.', 'jdown 사용하세요.'
노승일: '네에.' (startup, shutdown이 아니라고??? 톰캣이 아닌가보네.)
이 제품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바로 국산 소프트웨어 기업인 토마스사의 질리어스였다.
S/W개발자 불모지에서 2000년 이전에 국산 WAS를 개발해서 2001년에 기관에 납품을 했다? 의심이 많이 간다.
의심이 간다는 거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소스까지 전부 공개된 마당에,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솔루션은 오픈소스 모듈을 연구하거나 아예 가져다 개발한 것이고, 국내 뿐 아니라 외국 제품도 오픈소스 모듈들을 알게 모르게 많이 가져다 사용해 출시한다.
사장 입장에서 3개월치 인건비를 오픈소스로 대체하여 이틀치로 줄일 수 있다면 당연히 그 길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만약 오픈소스가 없다면 시중의 솔루션들은 씨가 마르고 특정 기업 몇 개가 독점화 할 것이다.
오픈소스는 개발자들의 선생님이자 상용S/W들의 어머니인 셈이다.
공개된 기술은 가져다 사용하라고 만든 것이고, 특별히 해당 소스에 권리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상, 누구든 사용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만 하면 그 부가가치의 임자가 되는 거다.
이건 나중에 '영업비밀의 보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개발자들은 무조건 '자기 기준의 양심'만 부르짖지 말고 냉정하게 양심을 챙길 대상을 잘 구분해야 한다.
개발자가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양심은 자기가 돈 잘 벌어서 부모님과 가족을 챙기고, 같은 S/W업계의 개발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양심이다.
작업이 끝나고 며칠 뒤에, 군말 없이 더 요구하는 것도 없이 바로 돈이 들어왔다.

<(주)애드물결 인터렉티브로부터 알바비가 들어왔다.
이게 분명히 맞을 것이다. 과거 이력서를 보아도 2003년 7월에 이 일을 한 것으로 되어 있고, 당시에 개인 이름으로 세금도 안 떼고 들어왔기에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우와~!',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프로그래머 되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공정거래 한 번 해봤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관계 끝날 때 줄 거 줬는데 받을 거 제대로 받는 경우가 이렇게 드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애드물결 인터렉티브가 디자인 쪽 웹에이전시 회사다보니, 프로그램 개발쪽 일은 깊이 있게 들어올 일이 없어서 나에게 제대로 된 소득을 안겨줄 만한 곳은 아니었다.
노승일: 'WHAT'SCOM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역시 웹에이전시 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전문개발자로 나가긴 어렵겠군'
고민이다. 또 일자리를 구해야 되네.
[세 번째 방문. 2003년 08월 22일]
노승일은 잡한국에 들어가서 매일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지역에서 인천 포함, 서울 강남 빼고', 'SI, SCM 언체크', '키워드에 java, swing, jsp'...
그러던 중 (주)애드물결 인터렉티브의 원용운 사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원용운: '노승일님, 정말 죄송한데 한 번만 출장와서 홈페이지 이자계산기만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돈은 드릴게요.'
노승일: '뭐 지금 아직 일을 못 구했으니 해드릴 수 있죠.'
원용운: '20만원이면 될까요?'
노승일: '어유, 감사하죠.'
원용운: '감사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잡고 며칠 뒤 다시 선생천국상호저축은행으로 2시간 정도 소비하여 도착하였다.
노승일: '아 제발, 이놈의 출퇴근 시간! 예전에 구파발 살았을 때에는 1시간 10분이면 오는 거리였는데! 젠장! 내 반드시 서울로 돌아오리라...'
자리가 없어서 자리 배정받으려고 입구에 잠깐 서 있었는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분잡하게 성큼 성큼 걸어다녔는데, 사람들이 이 남자를 계장님이라고 불렀다.
노승일: '30대 초반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계장이라고?'
노승일은 그 사람의 억양이 서울 말씨가 아닌데, 뭐지? (주)새으뜸정보기술 계장으로 이해하긴 했는데, 은행도 아니고 정보기술 회사에 계장??? 지금도 모르겠다.
저축은행 정규직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 계장에게 뭘 물어보자, 그 남성은 '이거는 OOO하게 하고! 그 전에 앞서서 OOO를 해야 되는데, 당연히 OOO를 OOO 하고 나서 해야죠!'라며 타박하듯이 아주 유창하게 말을 한다.
프로그래머들은 이러한 유창한 말솜씨에 쉽게 고수라고 속아 넘어간다.
상대의 유창한 말솜씨에 속아 넘어가는 프로그래머는 이미 앞으로 10년의 고생길이 펼쳐져 있다.
그러던 중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저축은행 정규 행정직원으로 보이는 사람과 프로그래머로 보이는 20대 후반의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프로그래머4명: '그거는 하려면 기간과 돈을 더 주셔야 되는데요.'
행정직원: '... 잠깐 회의실에서 얘기 좀...'
행정직원이 프로그래머들 말을 듣고는 별 말을 안하더니 회의실로 데리고 들어갔다가 바로 행정직원이 나와서 어디를 빠르게 달려갔고, 좀 있다가 전형적인 전화기 머리를 한 과장 정도로 보이고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반팔차림의 남자가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남자가 불과 1분 정도 후에 회의실에서 나와나왔는데, 그 20대 후반 사람들 몇 명은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며 울고 있었고, 나머지 프로그래머들도 눈물을 짜면서 흑흑거리고 회의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그 40대 후반의 반팔차림 고위직 남자가 돌아가다 말고 입구 밖에서 행정직원에게 '저것들 전부 다 OOOO OOOO OOOO해서 시켜버려!'라고 아주 무섭게 말을 하고 돌아갔다.
그러자 프로그래머들이 또 '으으으... 흑흑흑...'거리며 눈물을 짜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원용운 사원도 '어우... 여기 분위기 무섭네요.'라고 말을 하면서 눈치를 봤다.
노승일: '아, SI판에 안 들어오길 잘했다.', '역시 인터넷이 거짓말이 아니었네.', '평생 SI에 발 담그지 말아야지.'
당시에 말이 잘 안들려서 정확한 사유를 몰랐는데, 아마 그 40대 후반의 반팔차림 고위직 남자가 프로그래머들에게 시키는대로 하지 않아서 사업 안되면, 프로그래머 한 명당 수 억원의 손해배상을 물리고 온갖 법적 수단으로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그런 구도가 나오지를 않는다.
이번 편의 제목을 '야만적인 민속문화'라고 타이틀을 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문명국가라고 야만성이 없을까? 돈 많은 부자라고 반드시 문명인일까?
대세에는 따르되, 고정관념은 버리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
대세는 일시적 현상이고, 고정관념은 내 행동과 삶을 결정짓는 지배자에 해당된다.
우리의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언론과 미디어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고정관념이라는 또다른 지배자를 심어서 피지자들을 조종하려고 한다.
나는 저 간부로 보이는 남성이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웃으면서 말하자,
그 사람이 대뜸 다른 직원에게 불만 가득 + 어리둥절 반반의 말투로 '쟨 뭐야?'라고 옆의 정규 행정직에게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얘기를 듣자 마자 그 사람의 소양과 기운이 느껴졌다.
저축은행 고위직이니 프로그래머 따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저축은행 이자 얘기만 나오면 '저축은행이 사채업자지 무슨 그게 은행이야?'라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그날부터 노승일은 은행이라는 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성품에 대하여 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 상호저축은행은 선생들에게나 은행이지, 우리에게는 사채업자일 것이다.
[이자계산기 개발]
상호저축은행은 뭐가 됐든 소비자 관점에서 볼 때 금융사에 해당한다.
일반적인 사이트야 적은 금액이나 소수점 오류도 귀엽게 봐주겠지만, 저축은행은 모든 것이 민원요소이기에 값은 정확하게 해 놔야 또 호출이 안 온다.
기본적으로 몇 천억, 비정상적으로 몇 경원도 계산이 들어올 수 있으니 금액을 좀 크게 만들자.
문제는 당시 내 나이가 대출이나 금융과는 거리가 먼 나이잖아?
노승일: '원리금 균등상환?', '원금 균등상환?'
대충 원금과 이자를 어떻게 갚아나가는 방식인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복리이자 계산할 때 원리금 계산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사실 고등학교 때 배운 것도 체계를 알고 푼 게 아니라 아예 문제 대비 공식이 이거니 이렇게 풀어라 해서 외웠으니 문제가 무슨 얘기인지도 이해를 못한 채 시험점수 용도로 외웠기에 뭔지는 모르고 있었다.
노승일: '용운씨, 원리금균등방식이랑 원금균등방식을 계산하려면 공식을 알아야 되거든요.', '이거 혹시 하시나요?'
원용운: '아,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노승일: '이걸 알아야 되는데. 좀 알아봐 주실 수 없을까요?'
원용운: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그리고 원용운은 여기 저기 다니면서 10분 넘게 돌아다니다가 거의 포기상태가 되었다.
원용운: '아, (주)새으뜸정보기술쪽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아시는 분이 없네요.', '혹시 은행원이 알테니 가서 물어볼게요.'
아까 그 난리를 보고도 은행원에게 접근하시다니, 원용운씨는 용감한 사람이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은행원이 적어준 공식을 적어가지고 돌아왔다.
원용운: '알려주긴 했는데요. 은행원이 한마디 하더라구요.', '이거 우리가 원래는 알려주지 않고 당신들이 다 알아서 해야 되는 건데, 이래도 됩니까?'
그 은행원 말이 맞다.
턴키니까 당연히 사업자가 다 알아서 완성하고 열쇠만 전달하면 되는 거다.
노승일,원용운: '참 어렵구만.'
이자계산기 만들면서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웅성거리며 난리가 났다.
박팀장: '아씨! 안해! 그럴 거면 안해!'
다른팀장: '아~ 박팀장 왜그래~'
박팀장: '당신들끼리 알아서 해! 난 빠져줄테니까!'
다른팀장: '화내지 말고~'
박팀장: '뭐! 우리가 하드코딩을 잘하니까 우리더러 다 하라고?', '이것도 우리가 하고, 저것도 우리가 하고 다 우리거래. 아오~!! ㅆㅂ 우리가 호구로 보이냐?!!'
다른팀장: '아이~ 그런 뜻이 아니야~', '기분 상했으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들어와 다시 얘기 하자고.'
그런데 주변 개발자들의 반응은 무감했다.
노승일: '아주 흔하게 생기는 일이구만...'
당시에 나는 SI경험이 없었으니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이것은 발주자('갑') 밑에 모인 하청기업들의 '일 떠넘기기'였다.
과업이 하나 생기면 하기 싫어 죽겠으니, 제일 만만한 업체에게 조금이라도 연관성을 만들어서 죄다 몰아서 떠넘기고 철야에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수법이다.
이것은 또한 마음에 안드는 프로그래머를 고문시키는 전통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이 수법 또한 앞으로 많이 나올테니 기대해도 좋다.
그리고 원용운씨와 함께 테스트를 해보고 잘 되는 걸 확인하고 저녁이 되어 퇴청하였는데, 간단하게 뭘 좀 먹을까 하다가 근처 만두집으로 가서 만두를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만나서 얘기를 할 때에도 원용운씨는 분명히 뭔가 생각이 많아보였는데, 여기서 원용운씨의 고민을 알게 되었다.
5년, 10년이 지나도 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비전적 고민이었다.
노승일: '저는 WHAT'SCOM(주) 재직 때부터도 생각했지만 웹에이전시는 답 없는데요.', '어차피 외국에서 만든 기술과 모듈 가져다 가공을 해서 올리는 건데, 가공기술이라는 게 경쟁력이라도 있으면 돈이 되죠. 그런데 에이전시 분야는 디자인 위주라 개발 쪽으로는 특별한 경쟁력이라 할 게 없잖아요?', '근데 디자인 만 가지고는 어렵지 않을까요?'
원용운: '음.. 그런가요...'
노승일: '그리고 원용운씨는 매니징이잖아요? 이거 완전히 중간에 낀 일이예요. 대기업이라면 돈이라도 많이 주니까 인기가 많지만, 중소기업의 경우는 다르잖아요.'
원용운: '음... 형(사장) 말로는 광고쪽도 하고 회사가 커질 거라는데,'
노승일: '다른 뭘 더 하지 않는 이상 웹에이전시 쪽은 망하진 않겠지만, 돈이 되는 건 어렵지 않을까요? 전 웹에이전시 말고 좀 다른 걸 하려고 알아보고 있어요. 이쪽은 일량만 많고 돈 안돼요.', '광고는 원용운씨가 할 수 있는 일이 뭔데요? 이런 매니징 하시게요?'
원용운: '저도 생각을 계속 해봐야 되겠네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원용운사원이 자기 판단에 따라 자기 길을 간 것은 정말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누군가를 컨트롤 할 때 언제나 자기가 이익이 되는 쪽으로 하지 상대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컨트롤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은 결국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다.
자기에게 가장 큰 이익을 안겨주는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만약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판단하고 결정해서 망했다면, 그건 남의 말을 듣고 판단했어도 남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호구로 썩었을 운명이다.
내 생각, 내 자유, 내 권리를 타인에게 방임시키지 마라. 그런 건 노예들이나 하는 천한짓이다.
현재 (주)애드물결 인터렉티브 회사는 광고기획으로 꽤 유명해서 돈을 괜찮게 버는 것으로 아는데, 사원은 보직상으로 영업대표나 부장급이 아닌 사원으로서 매니징이었기 때문에 회사가 광고기획 중심으로 바뀌면 대기업('갑')의 갑질을 광고기획사 매니저가 전부 받아줘야 한다.
'그래도 좀 아는 사이니까 계속 버티면 편하고 월급 많은 자리 줄 거야.'
당신이 그 사장님 아들이거나 친동생이라면 가능하겠지. 그러나 그것은 사장님의 뇌 속에서 떠오르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당신의 뇌 속에서만 꾸는 긍정적인 꿈이다.
'그래도 중소기업이니까 이대로 적당히 하면 되겠지????'
만약 이런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1980년에서 왔는가? 당신은 꼰대인가? 아니면 머릿속을 비워놓고 다니는 프로불편러의 기질을 가진 인종,중소기업,저학력,성별,나이 토탈차별주의자인가?
발주자인 대기업('갑')은 돈만 지불하고 알쏭달쏭한 말만 하면서, 돈을 받았으면 돈이 되는 상품을 만들어서 납품하라고 다그치고 압력을 넣으면서 가만히 있는다.
세계적인 클래스의 대기업('갑')에게 그 밑의 중소기업('을')이 상품을 만들어서 납품하면, 대기업은 추가로 조립을 하든지, 아니면 그대로 가져다 필요한 곳에 놓고 play버튼 누르면 선진국들 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대한민국 소비자 앞에서 최고의 품질로 재생되어야 한다.
시장지배자 '갑'의 밑에 있는 '을'은 언제나 피곤과 갑질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