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2달 근무 후 이직합니다.
우선, 이 글은 스타트업 회사 자체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필자는 수년 전에도 스타트업 회사에 몸 담은 바 있으며, 스타트업 행사에도 참여해보았고, 수많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 회사를 응원하는 입장입니다.
글 내용에 등장하는 회사는 IT 전문 기업이 아니면서도, 개발직군으로 채용을 해서 근로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악덕 업체입니다.
약 두 달 반 전에 신입 백엔드 개발자로 지방의 스타트업 회사에 웹 개발자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이력서는 Java 백엔드 개발자로 올려두었는데, 연락이 먼저 와서 면접을 봤습니다.
5인 이하의 소규모 기업이었고, 면접볼 때 회사에서는 Java보다는 PHP를 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좀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연봉이 나름 괜찮고, 미취업 기간이 길어져서 일단 다녀보자 했습니다.
한 달 정도 업무를 하다보니, 사용한다던 PHP의 정체는 역시나, 라라벨이나 코드이그나이터같은 프레임워크가 아니라 그누보드였습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만 해도 5개가 넘는 것 같은데 전부 다 그누보드 기반으로 하드 코딩 해서 스파게티 코드 만들어놨구요.
MVC 패턴? 이런 거 없습니다. 게시판 등 페이지마다 다른 skin을 사용하고, CSS나 JavaScript는 각각 따로 작성되어 있고, 모든 프로젝트를 설계도 없이 개발을 시작합니다.
코드를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스파게티 코드의 전형이죠.
HTML DOM 안에 php 코드와 SQL이 짬뽕되어 있고, inline style도 많이 썼습니다. 스크롤하다 보면 갑자기 중간에 style 코드가 튀어나오고, 또 중간중간 script 코드, 또 필요하면 style 쓰고, 이런 식입니다.
그러다보니 php 파일마다 소스가 2천 줄이 가볍게 넘어가지요. 모든 페이지 예외없이 이렇게 쭉 작성해놓은 것들의 집합입니다.
인수인계도 없고 레퍼런스도 없이 중간에 투입되다보니 저 나름대로 스타일 코드 분리하고, JavaScript 코드 분리하고 이런 작업을 일부 했지만, 전체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더군요. 덩치가 산만큼 커져 갈아엎는 방법 외엔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물론 여유만 있으면 가능하겠지만, 프로젝트에 손 대고 나간 개발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설계 문서 없이 파일을 열어보고, 나름대로 파악해서 그대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뒤에 투입된 개발자들은 코드 파악하느라 몇 시간은 멍하니 쳐다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형상관리 git이나 SVN? 안 씁니다. 배포툴... 사용할 줄 모릅니다. FTP로 접속해서 그대로 본 서버에 소스 올려서 테스트합니다.
문제는 첫 시작을 비개발자인 임원이 개발을 엄청 쉽게 생각하고 손을 댑니다.
HTML로 구조 만들고 CSS 붙이고, JS 붙이면 완성되는 줄 압니다. DB는 설계도 없이 즉석에서 컬럼명과 데이터 타입 생각해내서 생성 누르는 거 보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개발자에게 맡겨서 설계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라고 시키면 좋겠습니다.
근데 여유가 없어서 할 시간도 없습니다. 유지보수 및 개발해야 할 프로젝트들이 항상 산더미죠.
입만 열면 "이거 이번 주 안에 다 해야 해." "오늘 하루만에 다 끝내줘."...
밤샘 근무도 가끔 했습니다.
직원은 기획 1, 디자인 1, 개발은 저 포함 2입니다.
항상 일을 맡기는 방식을 보니 웹 디자인이 전문 스킬이 아니고 다른 특기가 있는 디자이너 1명에게 웹 디자인까지(그것도 빠른 시일 안에 끝내길 바라고) 맡기고, 웹 기획 경험이 없는 기획자 1명에게 프로젝트 전체 기획을 맡기는 식입니다.
게다가, 경력직을 전혀 채용하지 않습니다. 프론트엔드/백엔드 뭐 하나 아직 실력이 갖춰지지 않은 신입급 2명에게 풀스택 개발자의 역할과 더불어 DB 전문가가 되어주기를 요구합니다.
현재 2달하고 보름 정도 다니면서 지켜봤는데, IT 전문 회사가 아닌데도 가져오는 일은 무슨 혁신적인 IT 회사에서나 시도할 법한 프로젝트들입니다.
현실은 No 프레임워크, Only 그누보드...
저는 이미 몇 주전에 이직할 회사 구해서 사직서 제출한 상태라서 더 이상 미련은 없습니다만, 앞으로 이 회사에 오게 될 불행한 개발자분들이 안쓰럽습니다.
그만두자마자 재취업한 케이스라 내일채움공제 2, 3년짜리 모두 가입이 불가능하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까운 부분입니다.
이런 회사는 절대적으로 거르시는 안목을 키우시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