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이민 생활을 하면서..
안녕하세요.
이곳에 처음으로 글을 올려 보네요. 저는 몇 년 전에 밴쿠버로 이민을 왔었는데 어느덧 개발자로 일한지 3년차가 되어 갑니다..
캐나다에서는 개발자 잡이 가장 많은 곳은 토론토, 그 다음이 밴쿠버 정도 인데요.. 요즘은 아마존 때문에 밴쿠버로 오시는 분들이 꽤 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의 밴쿠버쪽 이민은 이제 끝물이 지난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생각의 99%는 사실 밴쿠버 집값과 물가 때문이고요.. 토론토는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네요..
광역 밴쿠버 주거비 얘기를 잠깐 해보면...
요즘 싱글하우스 집값을 보면 다운 타운에서 대중교통으로 한시간 거리 정도 되는 코퀴틀람(한국으로 치면 출퇴근 시간으로만 봤을때 죽전 정도 되려나요) 하우스가 1.5-2백만불 정도 합니다. 좀 괜찮은 타운하우스도 60~100만불 가까이 하고요.. 물론 타운하우스도 밴쿠버 시내로 가까이 갈 수록 150~200만불에 육박 합니다.
밴쿠버 집값이 사실 이정도로 비싸지는 않았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두 배 넘게 폭등한것 같습니다.. (지금도 오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모아둔 돈이 꽤 된다면 모르겠지만 연봉 1억 이하의 평범한 개발자로 살아 오셨다면 아마 캐나다 오셔서 싱글 하우스의 꿈을 실현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여기도 그래서 요즘은 콘도(한국의 아파트에 해당)나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있는데 콘도 역시 코퀴틀람 같은 외곽 지역도 연식이 오래 되지 않은 것들은 60-70만불 이상 나가고 목조 아파트는 40-50만불 정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콘도나 아파트는 그 퀄리티가 한국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아파트에서 쭉 살았으니까 뭐 어때 라는 마음으로 여기 콘도를 보시면 아마 실망이 크실 겁니다.(일단 크기가 대부분 한국 옛날 20평대 방 두 개 짜리 아파트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렌트비 역시 집값에 따라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 이제 한인들이 많이 있고 비교적 정비가 잘 된 코퀴틀람쪽 투 베드 콘도의 경우 2천불을 넘어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젊은 분들은 원룸 같은 곳에서 주거비를 최대한 싸게 아끼면서 버티다가 식구가 늘어나게 되면 결국 더욱 외곽으로.. 외곽으로.. 밀려 나게 됩니다. 한국과 별 다를바 없는 주거 난민이죠. 여기도 요즘은 이렇게 랭리, 애보츠포드와 같은 외곽에서 밴쿠버 중심부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로 출퇴근길 고속도로가 서울 양재 톨게이트 마냥 꽉꽉 막힙니다.
여기(광역 밴쿠버) 급여 수준을 좀 보면요.. 보통 한국에서 개발 하시다가 이 곳으로 건너 오셔서 시니어 타이틀로 취업을 하시면 받게 되는 연봉이 회사 규모에 따라 8-12만불 정도인데요..(주니어는 4-6만불 정도 됩니다) 시니어 연봉의 bottom이라고 볼 수 있는 7-8만불도 꽤 많은 액수인 것 같지만 세금, 주거비, 물가 고려하면 한국 수도권에서 연봉 4-5천만원 수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 저것 고정비 빼고 나면 서울이나 수원 같은 수도권에 살면서 적자 안나고 겨우 살아가는 수준이죠. 대충 10만불 정도 되면 외식도 적당히 하고 저축 조금 하면서 살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연봉 9천 정도 받으시던 분이 여기서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5만불 이상은 받으셔야 합니다. 시니어로서 이정도로 받으시려면 적당한 회사로 가셔서는 좀 힘들고 다들 알만한 잘 나가는 회사(아마존, 마소, SAP, EA 등)로 가셔야 되구요.. 그래서 만약 한국에서 7-8천 받으시다가 여기서 연봉 8-9만불 받으시면 생활수준을 확 낮추셔야 합니다.. (엥겔지수가 엄청나게 높아 집니다..ㅎㅎ)
참고로 북미 대륙에서 개발자 실력 대비 연봉 수준이 가장 낮은 지역이 밴쿠버, 토론토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 교육, 자연환경 등 흔히 얘기하는 캐나다의 장점을 보고 이민을 오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실제 겪어 보면 좀 많이 다른데요..
노후 복지의 경우, 이민자의 경우 노후 연금을 20대 초반부터 여기서 일을 하며 세금을 내왔던 현지인들 수준만큼은 당연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연금을 맥시멈으로 받아도 사실 넉넉치는 않기에 여기 현지인들도 개인들이 알아서 열심히 노후 계획을 세우는데, 일부분만 받게 되는 30-40대 이민자들은 더더욱 부족할 수 밖에 없는거죠. 거기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직업으로 적당히 받는 연봉 때문에 저소득층에도 끼지 못해 복지 사각 지대에 놓이는... (차라리 저소득층으로 가계소득이 확 떨어지면 복지가 좋아지긴 합니다.) 느즈막히 와서 적응하기 바쁜 그러나 적당히 돈은 벌고 있는 저 같은 경우는 반쯤 포기하고 삽니다.. 그래서 막상 와보니 노후는 한국 보다 더 답이 없다는.. 캐나다의 노후 복지 자체가 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민자 입장에서 그렇다는 거죠. 가진 것 없이 늦게 와서 쌓인게 없으니 돌려 받을 것도 많이 없는... 어쨌든 복지 시스템 자체만 놓고 보면은 한국 보다 당연히 건실하고 세련된 시스템 입니다. 그래도 내가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죠.
자녀 교육의 경우, 왕따, 사교육 없는 세상을 꿈꾸며 많이들 오시지만.. 실상은 여기도 왕따도 많고, 또한 상당히 많은 사교육에 의해 캐나다 교육 시스템은 굴러 가고 있습니다. 한국 처럼 시험 위주의 교육이 아니지만 한국 못지 않게 사교육의 비중이 결코 작지 않고요. 그래서 부모의 경제력, 관심, 노력이 매우 매우 중요 합니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입시 스트레스는 없지만 이민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가 이해 하기 힘든 그들만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살아가며 이런 스트레스와 외로움, 우울함에 많이 노출 되기 때문에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왕따는.. 한국 처럼 극단적인 학교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덜하지만 여기는 약물 이라는 또 다른 위험이 있으며 우리 아이가 설마 라고 할 정도 보다는 높은 확률로 위험 합니다. (밴쿠버에서는 청소년 약물 중독이 매우 심각한 수준 입니다.) 그래도 솔직히 개인적으로 교육은 한국 보단 맘에 들긴 합니다만..
하지만 여기 교육 시스템이 부모의 시간적인 투자를 많이 요구 하기에.. 교육에 큰 의미를 두시고 이민을 오신다면.. 아이가 대학 가기 전까지 맞벌이는 과감히 포기 하셔야 합니다.. 정말 많은 엄마 들이 아이 장래를 위해서 하루 종일 아이 라이드 스케쥴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여자 개발자가 한국보다도 많지 않은것 같습니다.
밴쿠버의 여유로움, 친절한 이웃의 모습은 예전 같지는 않구요.. 인구가 도시 수용 한계를 넘어서 계속해서 늘다 보니 지역 경제에는 좋지만 예전 같은 밴쿠버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경쟁과 스트레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한국 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런 변화가 현재 진행형이기에.. 예전의 밴쿠버의 모습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료는 공짜이긴 하나 부족한 예산에 허덕이고 느리며 한국보다 질은 떨어집니다. 이미 인터넷에서 많은 얘기들이 올라와 있어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이것도 밴쿠버가 속한 비씨주가 가장 심각하고 토론토가 있는 온타리오나 타주는 상황이 좀 낫습니다)
안좋은 점만 잔뜩 풀어놓은 느낌인데, 사실 어느 곳에 가나 그곳만의 문제가 있고 풀어야할 숙제들이 있듯이 캐나다도, 특히 밴쿠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도 과거에는 집값이 저렴하고 한국에서 서울 아파트 하나만 팔고 오면 여기서 주거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고, 일자리가 적었지만 그만큼 사는 풍경도 여유로웠기에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지금은 한국의 삶의 질이 워낙 높아지고(헬조선이라고 하지만 나와서 살아 보니 그 정도 헬이면 참 살만 했다 싶습니다) 이곳의 삶의 질은 꾸준히 하락 중이어서 이민의 관점이 많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과거와 같이 이민을 위한 이민.. 즉 한국에서 쌓아 올린 것을 내려 놓고 큰 기회비용을 감수하면서 감행하는 이민은 한국인에게 더 이상 맞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그것 보다는 이민은 이제 개인의 커리어 발전을 위한 이직이나 유학으로서의 수단일 뿐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복지나 교육, 무상 의료 같은 것은 그 과정에서 그냥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그래서 겪어 보니 좀 실망 스러워도 그만인.. 그런 관점에서 개발자들의 이민은 참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긴 하나, 요즘 밴쿠버 집값을 보면 이것 마저 좀 더 신중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본인의 커리어 상 꼭 이루고 싶은 일이나 학업이 밴쿠버나 토론토에 있어서 넘어 오는 경우,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아주 젊은 분들, 그리고 한국에서 만족 스럽지 못한 환경에서 어중간한 연봉(3~5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캐나다에서 훨씬 좋은 오퍼를 받는 경우(혹은 받을 자신이 있는 경우)의 캐나다로의 이민은 참 좋은 기회일 것 같으나, 이미 좋은 처우와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개발자들이 자녀 교육, 노후, 복지와 같은 요소들을 보고 굳이 밴쿠버나 토론토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받고 이민을 올 필요는 더 이상 없는게 아닌가 합니다. 자녀 교육, 노후, 복지 등과 같은 문제는 한국에서 경제적인 안정을 이룬 상태라면 이민이 아니더라도 다른 대안들이 많이 있는 것 같고요.
요즘 시간이 좀 남고 생각도 많아져서 처음으로 글을 남겨 봤는데 여기 이민 생활이 궁금하신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ps. 이 글의 대부분의 내용은 광역 밴쿠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토론토는 밴쿠버 보다는 주거비는 조금 저렴한 반면 평균 연봉은 밴쿠버 보다 더 높은 편입니다. 그리고 토론토 주변에 키치너, 워털루라는 작은 도시들은 병원 및 편의시설이 대도시 보다는 다소 부족하지만 대신 주거비가 더욱 저렴하면서 개발자 잡이 꽤 있으니 선호하는 조건과(의료, 교육, 기후, 인프라 등) 본인 예산에 따라서 함께 참고하시면 좋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