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선 앞두고 '폭풍전야'
[ 뉴스1 제공](서울=뉴스1) 김민구ㆍ서영진ㆍ이동희 기자=
"여소야대이든 야소여대이든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이동통신업계 관계자)
"여야가 순환출자 금지와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으로국내 기업에 부담을 줄 경우가뜩이나 어려운 우리경제에 빨간 불이 켜지게 될 겁니다"(모 그룹 관계자)
"총선 이후 노동계 출신 인사가 대거 국회에 진출할 것으로 보이며 노사 간 합의를 거쳐 13년 만에 시행된 노사관계 선진화 제도가 물거품 될 수도 있습니다"(전경련 관계자)
'4-11 국회의원 총선거'를 하루 앞두고 재계는 초비상이다.
총선 이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민주당) 등 어느 쪽이 제1당이 되든 '대기업 때리기'가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총선에 사활을 건 정치권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과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납품단가 인하, 일감 몰아주기 규제, 초과이익 공유제 등이 '경제 민주화'라는 명분 아래 등장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재벌 해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다 반기업 성향 정치인들이 19대 국회에 대거 입성할 가능성도 높아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들은 이번 총선에 이어 6월 19대 국회 원 구성후 대기업에 대한 다양한 규제 법안이 쏟아질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한 비상계획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총선을 하루 앞두고 관심이 차기 국회로 모아지고 있다. 여소야대가 현실화될 경우 순환출자 금지 등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의 핵심 이슈는 크게 3가지다.
문어발로 상징되는 경제력 집중과 지배구조 개선,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이다. 이 가운데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서는 과세를 신설하는 등 공감대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
결국 대기업에 대한 정치권의 최대 관심은 순환출자 문제와 출총제 부활이다.
이 가운데 순환출자 금지는 오너 일가의 경영권 장악과 관련이 있다.
순환출자 규정에 걸리는 대표적인 그룹은 삼성과 현대차, 현대중공업, 한진그룹 등이다.
삼성, 현대차 등 대다수 기업은 계열사끼리 지분을 소유해 경영권을 유지하는 순환출자 형태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지 못했으며 경영권 승계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시작으로 현대차와 기아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지녔다. 순환출자구조는 그룹 내의 주요 계열사까지 지분을 소유해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을 말한다.
삼성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환상형 출자구조다.
현대차 역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형태로 지배구조가 이뤄졌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다.
한진그룹도 사정은 비슷하다. 조양호 회장 등 총수 일가가 대주주인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이루고 있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에서는 대기업의 순환출자구조 자체를 금지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정치권의 재벌개혁은 선거때마다 단골메뉴였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재벌에 대한 사회 여론이 악화되면서 재벌개혁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위 관계자는 "순환출자 문제가 크거나 경영권 승계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그룹은 사실상 비상시국"이라며 "대기업마다 정치권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별 다른 특이사항은 없지만 총선 결과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무덤'에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다시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 2009년 폐지됐던 출총제가 3년만에 무덤에서 되살아 나온 것이다.
출총제는 대기업 순자산의 일정 비율까지만 계열사에 출자할 수 있도록 한제도다. 지난 1987년 대기업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줄이 처음 도입됐다.
재계 관계자는 "출총제가 부활되면 한화그룹 등이 당장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화그룹은 대한생명 지분을 일부 매각해야 할 처지다.
한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이 모두 40% 출자 한도를 초과한 상태인데 특히 한화와 한화건설이 보유한 대한생명 지분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SK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SK그룹은 대부분 계열사가 출총제 제한 적용을 받지 않는 지주회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SK C&C의 계열사 출자 규모가 한도 40%를 넘는다.
이는 SK그룹 지주회사 SK에 대한 지분 때문이다. 출총제가 도입되면 SK C&C가 SK와 합병되면서 지주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의 '민심잡기용 단골 메뉴' 중 하나가 바로 통신비 인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직격탄을 맞는 이동통신사들은 선거철만 다가오면 표정이 어둡다.
최근 여당은 통신비 20% 인하와 롱텀에볼루션(LTE) 무제한을 공약으로 세웠고 야당의 경우 가입비와 기본료 폐지를 전면에 내놓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여당과 야당이 목소리만 다를 뿐 결국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며 "우리에겐 여소야대든 야소여대든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소비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가계통신비가 전체 생활비의 5%를 육박하고 매년 적게는 수 천억원에서 수 조원의 순이익을 내면서 왜 죽는 소리냐는 것이다.
직장인 강병훈(29)씨는 "요금을 내리면 투자비가 없어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일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그러면서 매년 고배당 잔치로 주주들의 배만 채워주는 것은 무슨 심보냐"고 개탄했다.
이어 강씨는 "이명박 대통령도 통신비 20% 인하 공약을 내걸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공수표에 불과한 것 아니냐"며 "지금까지 사례로 미루어 볼 때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동통신사에 단말기를 공급하는 제조사도 정치권의 압박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신 기술과 비싼 부품, 로열티 등이 다 포함돼 있는데 단순히 판매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가격을 낮추라는 것은 억지라는 주장이다.
A 제조사 관계자는 "매년 새로운 모델을 내놓을 때마다 가격을 수 백만원 씩 올리는 자동차 회사는 두고 왜 스마트폰만 비싸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제조사들이 지금껏 이동통신사와 짜고 출고가를 부풀린 뒤 보조금을 얹어 싸게 팔아왔던 관행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의 한 휴대폰 판매점 사장은 "파는 입장에서 봐도 휴대폰 가격에 거품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판매촉진비라는 명목으로 대당 많게는 100만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가격을 낮출 여력이 없다는 것은 억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