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AI는 안녕하십니까?
‘샌프란시스코 선언’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한민국 리더들이 OpenAI, 앤스로픽 등 세계 최고 빅테크 수장들의 중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열기가 가라앉은 뒤에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남아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AI는 정말 안녕하신가?’
지금의 AI 혁명을 이끄는 OpenAI나 앤스로픽은 반도체 제조 기업이 아니다. 이들의 본업은 대규모 언어모델(LLM) 개발이며, 그 LLM을 어떻게 훈련시키는지에 대한 노하우는 현 지구상에서 가장 은밀한 비밀이다. 반도체는 그 훈련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즉,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ChatGPT나 Claude를 똑똑하게 만드는 본질이자 핵심 주체는 바로 ‘트레이닝 방법론’이다.
요즘 언론을 보면 국내 AI 인프라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된다는 기사가 쏟아진다. 일각에서는 무려 5,0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논하기도 한다. 문득 궁금해져 자료를 찾아보았다. 과연 그중 한국형 LLM 자체 개발에 할당된 투자금은 얼마일까. 뒤져본 끝에 찾아낸 공공 발표 금액은 약 5,000억 원. 순간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반도체 강국이다. 반도체는 AI를 훈련하기 위한 필수 도구이기에,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반도체 강국’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정작 더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반도체 확보전이 본격화되기 전, 미국 빅테크 사이에서는 치열한 ‘LLM 전쟁’이 먼저 터졌다. 자본과 인재가 넘쳐나는 구글, 메타, xAI가 사활을 걸고 모델을 만들었다. 특히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LLM 훈련의 핵심 노하우를 확보하기 위해, OpenAI 출신 핵심 엔지니어들에게 수억 달러—한화로 5,000억 원이 넘는 거액의 보너스를 제시하며 스카우트전에 나섰다. 핵심 인재 몇 명을 모셔 오는 데만 우리 정부가 LLM 전체 개발에 걸어둔 예산만큼을 쏟아부은 셈이다.
이 관점으로 다시 우리의 현실을 보자. 한국형 LLM 개발에 5,000억 원, 반도체 인프라 투자에 5,000조 원. 반도체 투자 대비 단 0.01%의 자원만이 정작 가장 중요한 ‘두뇌 훈련’에 배정되어 있는 실정이다. 물론 반도체 공장 건립과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투자의 성격이 같을 수는 없다. 반도체가 핵심 도구인 것도 맞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도구라 해도, 두뇌가 완성되고 나면 도구 그 자체의 독점적 가치는 점차 감소하기 마련이다.
닷컴 버블 시절을 돌아보자. 당시 인터넷 시대를 열었던 네트워크 장비의 절대 강자는 시스코(Cisco)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생태계 위에서 진짜 거대한 가치와 패권을 쥔 것은 시스코의 장비 기반 위의 서비스를 만든 구글과 아마존이었다. OpenAI와 앤스로픽 내부에도 천재적인 한국인 연구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제는 이들을 모셔 와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찾아가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저커버그가 바보여서 엔지니어 몇 명의 인건비로 5,000억 원을 던진 것이 아니다. 판을 바꾸는 것은 결국 ‘두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