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드립 소설] 8. 출애굽
소설 8부: 출애굽
8-1장: 첫걸음
그 주 금요일, 주간 경영 회의였다.
대표가 테이블 위에 출력물을 내려놓았다. CS 인입 현황 리포트였다.
"작년 블프 때 결제 터져서 보상 쿠폰만 830만 원어치 뿌렸어요."
마케팅 팀장이 손을 들었다.
"대표님, 830만 원이면 마케팅 비용으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입니다. 저희도 이벤트 오류 나면 쿠폰으로 수습하고 있고요. 그 정도는 운영 비용 아닙니까?"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근데 지금 결제 CS가 석 달째 0건이거든. 쿠폰 830만 원 같은 직접비만 볼 게 아니라, 그거 수습하느라 들어간 인건비, CS 대응에 묶여서 못 돌린 기회비용, 그런 간접비까지 같이 봐야 해요."
대표가 최윤석 재무 팀장을 봤다.
"최 팀장은 어떻게 생각해요?"
최 팀장은 볼펜을 돌리던 손을 멈췄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환 과정에서 저희 재무팀이 좀 불편했던 건 사실입니다. 시스템 바꾸는 동안 일부 정산을 엑셀로 돌리라는 소리를 석 달을 들었거든요."
잠깐 멈추었다가 볼펜을 내려놓았다.
"저는 수치화돼서 측정되는 문제는 안심합니다. 830만 원이면 830만 원이지, 그건 보이니까요. 근데 사고가 터졌을 때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수습에 누가 얼마나 묶이는지, 그건 측정이 안 돼요. 그게 지금은 없어졌고요. 그건 인정합니다."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솔직히 문 수석 영입에 적지 않은 비용을 썼어요. 여러분도 아시잖아요."
대표가 자리를 둘러보았다.
"결제 하나 잡은 걸로 끝나면 그건 비싼 외주예요. 이 사람이 가져온 방식이 우리 회사에 뿌리를 내려야 진짜 투자가 되는 거지."
대표가 웃었다.
"이 방식을 다른 업무에도 확산할 수 있는지 검토해봤으면 해요. 적용 범위랑 필요 인원까지 같이 보고요."
며칠 뒤, 박종수 경영지원실 팀장이 실무 회의를 소집했다. 참석자는 마케팅 팀장, 결제 팀장, 성치훈, 문 수석, 우진, 그리고 세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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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문이 닫혔다. 박종수가 입을 열었다.
"경영 회의에서 나온 얘기는 다들 들으셨죠. 결제 쪽 방식을 다른 업무에도 확산할 수 있는지, 각 부서 의견 들어보겠습니다."
박종수가 결제 팀장을 봤다. "결제 쪽은 어떠세요? 현재 방식 전환 후 실무적으로."
"좋냐고 물으시면 모르겠는데, 일단 돌아갑니다. 아직은 문제 없어요."
박종수가 메모를 하며 마케팅 팀장을 봤다. "마케팅 쪽은요?"
마케팅 팀장이 치훈을 힐끗 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희는... 이벤트 배포하면 신경이 곤두섭니다. 괜히 사이트 들어가서 새로고침하면서 문제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직원도 있고요."
말끝이 흐려졌다.
"그런 거 없이 일할 수 있으면... 좋긴 한데..."
치훈이 팔짱을 풀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잠깐, 그러면 마케팅 이벤트도 결제팀처럼 하자는 거야? 테스트 짜고, 리뷰하고, 스테이징 올리고? 그거 다 하면 이틀이야. 이틀이면 경쟁사가 이벤트 두 개를 끝내. 마케팅은 그렇게 움직이는 게 아니야."
치훈이 손을 내저었다.
"결제는 그래야지. 돈이 걸려 있으니까. 근데 마케팅 배너 하나 바꾸는 데 회의하고 테스트 소스 만들고 앉아 있으면 그게 IT 회사야? 전시회야?"
치훈이 마케팅 팀장을 바로 봤다.
마케팅 팀장이 그 시선을 의식하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성 부장님, 솔직히 부장님 아니었으면 저희 몇 번 죽었습니다. 근데... 부장님이 안 계시는 날에 터지면요?"
치훈이 씩 웃었다.
"그래서 내가 VPN으로 제주도에서도 고치잖아."
치훈이 마케팅 팀장을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걱정 마. 수면내시경을 해도 연락 오면 받아줄게."
결제 팀장이 다시 입을 열려 했다. 치훈이 의자를 밀며 일어섰다.
"아니, 잠깐만. 내가 얘기할게."
치훈이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마커를 집지는 않았다. 그냥 서서 말했다.
"마케팅이 뭐야. 오늘 기획해서 내일 나가는 거잖아. 반짝 세일, 할인 쿠폰, 배너 교체. 이런 거는 빠르게 치고 빠져야 해."
치훈이 손을 내저었다.
"잘못되면? 쿠폰 하나 더 쏘면 돼. 고객이 할인 좀 더 받았다고 소송 걸어? 안 걸어. 고객이 물고늘어지면 쿠폰 하나 더 쏘면 끝이야."
치훈이 마케팅 팀장을 똑바로 봤다.
"팀장님, 여태껏 아니, 올해. 올해 마케팅 쪽 소송 건 있어요?"
마케팅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치훈이 손가락을 세웠다. "없잖아."
치훈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근데 결제는 달라. 돈이야, 돈. 결제가 잘못되면 고객 통장에서 돈이 두 번 빠져나가. 환불이 안 되면 금감원에 민원 들어가. 정산이 하루만 밀려도 판매자한테 전화 폭탄이야."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케팅에서 배너 잘못 걸면 웃고 넘어가지만, 결제에서 숫자 하나 틀리면 회사가 법정에 서. 이게 같냐고."
우진은 치훈을 봤다. 결제를 쿼리 한 줄로 고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이게 같냐고"라고 말하고 있었다.
치훈이 마케팅 팀장을 봤다.
"팀장님, 솔직히 말해. 마케팅 이벤트 터지면 어떻게 해? 나한테 전화하잖아. 내가 쿼리 한 줄 고치면 끝나잖아."
치훈이 잠깐 멈추었다.
"근데 결제 터지면? 쿼리 한 줄로 안 끝나. 내가 고치면 다른 데서 터져. 고치고 터지고 고치고 터지고. 나도 겪어봤어."
치훈의 목소리가 잠깐 낮아졌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들이대면... 아니, 닭이니 소니 그러니까..."
치훈은 심호흡했다.
"마라톤이랑 100미터 달리기야. 둘 다 달리기야. 근데 훈련이 달라. 마라톤 선수한테 100미터 뛰라고 하면 못 뛰고, 100미터 선수한테 마라톤 뛰라고 하면 죽어."
치훈이 손가락을 세웠다.
"결제는 마라톤이야. 천천히, 꾸준히, 하나하나. 근데 마케팅은 100미터야. 총소리 나면 바로 뛰어야 해. 거기다 마라톤 훈련 시키면 출발도 못 해."
치훈이 마케팅 팀장을 봤다.
"팀장님, 제 말 이해하시죠? 우리는 100미터 달리기잖아요."
마케팅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치훈을 바라봤다.
우진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아 있었다. 닭과 소가 이젠 마라톤이 됐다.
결제 팀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희도 마라톤이긴 합니다. 결제 말입니다. 문 수석님이 오시기 전에도요."
치훈이 머리를 긁으며 "하... 참..." 하고는 결제 팀장을 훽 돌아봤다. 입을 열려는 순간, 박종수가 끼어들었다.
"자, 자. 양쪽 의견 다 들었습니다. 업무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건 확인됐고요."
박종수가 문 수석을 봤다.
"문 수석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문 수석이 입을 열었다. 회의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었다.
"마케팅 영역은... 지금 방식으로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치훈이 시선이 문 수석 쪽으로 향했다.
결제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박종수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안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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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장: 출애굽
박종수가 노트북을 넘기며 말했다.
"커뮤니티 댓글 수정 건, 기획팀에서 매주 올라오는데 반년째 방치입니다. 누가 맡을 수 있습니까?"
침묵이 흘렀다. 문 수석은 결제 정산 고도화를 진행 중이었고, 치훈은 마케팅 이벤트로 손이 꽉 차 있었다.
박종수가 우진을 돌아봤다.
세진이 먼저 손을 들었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박 팀장이 문 수석을 봤다. "괜찮으신가요?"
"2주 정도는 괜찮습니다."
세진이 거들었다. "제가 이전 커뮤니티 담당자였잖아요."
문 수석이 세진을 보며 말했다.
"커뮤니티는 단순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박 팀장이 끼어들었다.
"커뮤니티도 중요합니다. 이번에 기능 추가 건이 쌓여 있어요."
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제 팀장이 먼저 일어서서 회의실을 나갔다. 나머지도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날 저녁, 사무실이 빈 뒤에도 세진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소스 코드를 열었다.
그리고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