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드립 소설] 6. 기이한 정적
소설 6부: 기이한 정적
6-1장: 평소와 같은 하루
금요일 오후 4시. 마케팅팀에서 긴급 메신저가 떴다. "주말 플래시 세일 할인율 15%에서 20%로 변경 부탁드립니다. 오늘 중으로요!"
치훈은 검은 SQL 클라이언트 창을 열었다. 커서가 움직였다. UPDATE 문 한 줄. 실행. 확인. 메신저에 "됐습니다" 세 글자를 쳤다. 시계를 보니 4시 12분이었다.
치훈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투를 걸치다가 문 수석 쪽을 흘끗 보았다. 문 수석은 오늘도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있었다. 이틀째 같은 자리였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고,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치훈은 외투 단추를 잠그며 옆 자리 박 팀장에게 말했다.
"나 먼저 간다. 주말 세일 건 끝났어."
박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훈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문 수석의 모니터에는 코드가 아닌 엑셀 명세서가 띄워져 있었다. 치훈은 박 팀장에게 턱짓을 했다.
"저 양반 이틀째 저러고 있어. 우진이 때도 저랬거든. 그림 그리고, 선 긋고, 파일 쪼개고. 그러다 결제 터지면 또 내가 수습해야 돼. 라꾸라꾸 하나 갖다놔야 하나."
치훈은 돌아서다가 우진을 보았다.
"우진 씨, 라꾸라꾸 2개 알아봐줄 수 있어?"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네? 왜요?"
"결제 터지면 우리 둘이 수습해야 돼. 저 양반 코드 누가 해독해."
치훈은 씩 웃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우진은 치훈이 들어간 엘리베이터의 닫힌 문을 한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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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장: 기이한 정적
정산 시스템 개편에 2개월이 소요되었다. 기한은 몇 차례 조정이 있었지만 사전에 조율되어 이슈로 번지지 않았다.
어느 주간 회의에서 마케팅팀 이현주 대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번 달에 결제 관련 CS 인입이 몇 건이었죠?"
운영팀 담당자가 노트북을 뒤적이다 멈칫했다. "...0건입니다."
"그 전 달은요?" "3건이요." "그 전 달은?" "17건."
숫자가 읽히는 동안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이현주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그 숫자의 의미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회의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회의가 끝난 뒤, 이현주가 복도에서 동료를 붙잡았다.
"야, 결제 CS 0건이면... 언제부터 그런 거야?"
"글쎄, 나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우진도 그 회의에 앉아 있었다. 17건, 3건, 0건. 숫자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결제였다. 0건이었다. 우진은 회의실을 나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오후, 치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0건이긴. 엑셀로 결제를 보는데 시스템에서 오류가 왜 나."
옆자리 결제 담당 사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 성 부장님, 이제 엑셀로 안 하긴 해요."
치훈은 잠깐 멈칫했다가 말을 이었다.
"저 양반은 경영진이 뒤를 봐주니까 저렇게 시간을 얻는 거야. 우리 때 마케팅팀이 석 달을 기다려줬어? 당장 내일까지 해, 아니면 우린 다 죽어, 그랬잖아. 환경이 다른 거지 실력이 다른 게 아니야."
치훈은 내뱉었다. "아 진짜, 나한테도 고칠 거 있으면 미리 좀 얘기해. 맨날 오늘까지 해달라, 지금 당장 해달라, 그러고는 왜 안 되냐고 난리치지 말고." 회의실 문이 쾅 닫혔다.
마케팅 팀장이 놀라서 쫓아갔다. "아 성 부장님, 잠시만요~ 저희 사정 아시잖아요~ 속도가 생명인 부서가, 아니 그러니까, 저희가 미리 드리면 좋은데 그게 매번 그렇게 안 되는 게—"
우진은 치훈의 말을 곱씹었다. 예전 같았으면 변명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일리가 있었다. 경영진의 지원 없이 문 수석이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까. 우진도 당시 그런 시간을 받지 못했다. 우리한텐 왜 그랬던 거지. 아까 삼켰던 그 문장을 치훈이 대신 뱉어준 것 같았다. 치훈의 말이 맞다면 문 수석의 성공은 실력이 아니라 환경의 산물이다.
하지만 가슴 어딘가에서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