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소설] 알고리즘의 자식들: 신입 사원은 010101
1. 프롤로그: 자소서의 종말
김우식(27세, 취준생)은 오늘도 '사람잡는인' 사이트의 새로고침 버튼을 누른다. 13개의 탭이 크롬 브라우저 상단에서 덜덜 떨고 있다.
"신입 개발자 채용(경력 3년 이상 우대)"
이것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소리인가, 아니면 '조용하게 소리 지르기' 같은 고도의 은유인가. 우식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2019년, 컴공과만 가면 인생 탄탄대로라던 교수님의 말은 이제 성지순례용 악플이 달리는 성지가 되었다.
그는 챗GPT를 켰다. [질문]: AI 때문에 내 일자리가 없어질 것 같은데, 인사담당자의 마음을 울리는 자소서 좀 써줘.
[답변]: 죄송합니다. 인사담당자는 이미 저(AI)를 이용해 서류를 필터링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울리기보다는 데이터 규격에 맞추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우식은 담배 대신 비타민 캔디를 씹었다. AI가 내 자소서를 쓰고, AI가 그 자소서를 읽는다. 인간은 그 사이에서 전기세만 내는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2. 베트남의 유령들
같은 시각, 베트남 호치민의 어느 공유 오피스. 한국에서 10년 넘게 구르다 건너온 김철홍 대표는 '바이브 코딩'의 정수에 빠져 있었다.
"어이, 웬(Nguyen). 이거 코드 돌아가나?" "대표님, AI가 짠 코드라 95%는 완벽한데, 5%가 자꾸 베트남어로 주석을 다네요."
철홍은 웃었다. 과거 한국에서 개발자 40명이 붙어야 했던 프로젝트를 이제 베트남 현지인 15명과 AI 세 마리(?)로 해결하고 있다. 회의는 필요 없다. AI가 이미 진도를 체크하고 문서까지 다 만들어주니까.
"세상 좋아졌어. 예전엔 밤샘 야근하면 박카스라도 사다 줬는데, 이제는 서버비만 결제하면 되니까. 미안해하지 말자고. 이건 진화야."
하지만 철홍의 마음 한구석엔 찜찜함이 남았다. 그가 한국에서 해고했던 수많은 '불필요해진 인력'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우식처럼 13개의 탭을 띄워놓고 있겠지.
3. 피아노 치는 기획자
학원가 뒷골목. 피아노 건반 대신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리는 김지은이 있다. 음대 졸업 후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예술은 배고프고, AI는 배가 안 고프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진로 고민마저 AI와 상담했다. "나 기획자 해도 될까?" "당신의 MBTI와 지난 3년간의 활동 로그를 분석한 결과, 당신은 인간의 감성을 이해하면서도 데이터의 규격을 맞출 줄 아는 'AI 에이전트 조련사'에 적합합니다."
지은은 이제 AI를 팀원으로 부린다. 채팅방을 세 개 판다.
1번 방: "너는 까칠한 시니어 개발자야. 내 기획안을 비판해."
2번 방: "너는 감성적인 디자이너야. 픽셀 하나까지 따져."
3번 방: "너는 보수적인 투자자야. 돈 안 될 것 같으면 욕해."
그녀는 혼자서 4인분 역의 프로젝트를 끝냈다. 지은은 깨달았다. 이제 실력은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시키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4. 자전거를 타는 법
다시 우식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식은 결심했다. AI에게 대체당하기 전에, AI를 타고 산을 넘기로.
그는 단순히 코딩 문제를 푸는 데 AI를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200장짜리 보고서를 통째로 AI와 분석하고, 직접 10분짜리 단편 영화를 AI로 제작해 보기로 했다.
"자전거 백과사전을 읽는다고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야. 넘어져야지."
우식은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imagine: 낡은 자전거를 타고 디지털 바다를 건너는 취준생의 모습, 4k, 비장미, B급 감성.
잠시 후 출력된 이미지 속의 남자는 우식을 닮아 있었다. 아니, 조금 더 용감해 보였다.
5. 에필로그: 2026년의 출근길
우식은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 직함은 'AI 협업 매니저'. 출근하자마자 그가 하는 일은 AI 사원들에게 오늘의 할 일을 분배하는 것이다.
옆자리 변호사는 AI가 찾아준 판례를 검수하며 책임감을 담보하고 있고, 앞자리 카피라이터는 AI가 뱉어낸 수만 개의 카피 중 단 하나의 '인간적 터치'를 고르고 있다.
세상은 망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빠르고 얄팍하게' 변했을 뿐이다. 우식은 퇴근길에 자전거를 탄다. 이건 AI가 대신 타줄 수 없는, 근육이 떨리는 진짜 경험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