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자판을 두드린다...(후편)
“미쳤냐?
새우잡이 배로 끌려가는 거 아니야?”
일본 여행을 몇 번 더 다녀오면서
생각이 조금씩 굳어졌다.
‘아시아에서 이 정도 시스템과 질서를 가진 나라는
그래도 일본밖에 없구나...’
그 무렵, 인터넷을 통해
일본 기업 8곳에 영문 이력서를 보내봤다.
물론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 했고,
그냥 정말 영문 이력서 한 장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아니, 아예 기대를 안 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다섯 달이 지나도
어디에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렇지 뭐...’
일본어도 못하는데 지극히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확히 다섯 달쯤 지나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채용이 결정되었으니
취업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를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스팸 메일인 줄 알았다.
인터뷰도 없었고,
전화도 없었고,
면접은 더더욱 없었다.
그냥 영문 이력서 한 장이 전부였다.
정상적인 상황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얘기하자
반응은 한결같았다.
“미쳤냐?”
“그거 사기 아니야?”
“일본어도 못하면서 뭘 가?”
“새우잡이 배로 끌려가는 거 아니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들이 다 맞았다.
나 스스로도
정상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선택지를
마주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조건을 하나 걸었다.
‘딱 2년만!’
‘2년만 가보고, 아니면 돌아오자!’
월급이 얼마인지도 모른 채,
어떤 회사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단단히 미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31살이었고,
잃을 게 별로 없었다.
“뭐, 2년 고생하는 게 대수겠어?”
그렇게 일본행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결정됐다.

단 3주 만에
1년짜리 취업비자가 나왔고,
1998년 2월 9일,
대한항공 비행기로 일본에 가게 됐다.
회사에는 차마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어서
일본 유학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장기 휴직계를 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선택이 내 인생을
이렇게 크 바꿔놓을 줄은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