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건 여러분의 재능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개발자가 재능 빨이라며, 재능 없으면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는 식의 썰을 많이 접해보셨을 겁니다. 이것의 원인을 파고들면 그 끝에는 결국 기형적인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사회적 압박이 있습니다.
이 '재능론'에 가스라이팅 당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한국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아요. 대학은 4년 안에 칼졸업해서 바로 취업하지 않으면 하자 있는 낙오자가 되고, 뒤늦게 적성을 찾아보려 해도 2년제나 비전공자에게 열린 편입의 문은 바늘구멍이며, 제대로 된 재교육 코스는 사실상 전무합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그 빡빡한 트랙에서 한 번이라도 미끄러지거나 이탈하면 다시 돌아오기가 너무나 힘든 구조죠.
이런 조급증의 정점이 바로 국비지원 과정입니다. 4년을 배워도 현장에 나가면 허덕이는 게 이 바닥 생리인데, 비전공자를 데려다가 단 6개월 만에 실무 투입 가능한 개발자로 찍어내겠다니 이게 말이 되나요. 이건 교육이 아니라 거의 차력쇼죠.
그러니 이 말도 안 되는 속성 과정을 어떻게든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거나 원래 습득력이 남들보다 빠른 소수의 인원만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생존자들을 보며 "역시 개발은 타고난 재능충들의 영역"이라며 멋대로 단정지어 버리죠. 정작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수많은 사람들은 충분한 시간과 제대로 된 가이드만 있었다면 훌륭한 개발자가 될 수도 있었을 원석들인데도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35001
한때 6개월 국비교육으로 네카라쿠배간다는 광고가 횡행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 링크에서 언급한 통계에는 2020~2021년간 현직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이 36,600명 느는동안 비전공 인력은 고작 1,100명 늘어서 전체 증가폭의 3%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동기간 코딩교육학원 등록자가 10만명이 넘는걸 감안한다면 학원 등록자 대비 1% 남짓한 숫자만이 취업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 수준이에요.
어떤 영역이던 그걸 남들보다 빠르게 익히는 재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암기력으로, 어떤 사람들은 논리력으로, 어떤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에 대해 두루 아는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능은 어떠한 지식이나 기술을 남들보다 빠르게 익히는데 도움이 될 뿐이지, 그 재능이 특정 직업을 시작조차 못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특정 나이가 되는 순간 자동으로 한글을 익히는게 아닙니다. 구구단을 학교 가기전에 배우는 아이도 있고 늦게 익히는 아이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정도는 늦든 빠르든 익히게 됩니다.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남들보다 더 길게, 더 오래, 더 지독하게 파고들 생각을 해야지, 고작 몇 달 깔짝거려 보고는 "나는 재능이 없네", "저런 건 천재들이나 하는 거네" 하면서 도망칠 핑계부터 찾는건 되려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만이죠.
칸 아카데미의 Sal Khan은 예전에 고대 이집트 시절에는 글을 읽고 쓰는건 선택받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나 가능한거라 믿었고, 중세 유럽에서 미적분은 선택받은 재능있는 사람들이나 배우는거라고 말했습니다. 개발이 다를 이유가 있을까요?
노력한다고 모두가 빅테크에 갈 수는 없습니다. 자리는 정해져있고 실력만으로 정해지는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노력하면 누구나 개발자로 밥벌이 하는 정도는 가능합니다. 적어도 이 바닥은 타고난 배경보다는 노력을 더 인정해주는 곳이니까요.
무조건 국비가 안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무조건 4년제 학위를 따야 한다는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개발자로 전업을 목표한다면 최소한 짧은 시간에 뭔가 될거라는 생각은 버리시고, 무언가 자격증을 따거나 수료를 하는 대신에 제대로 된 전공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