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이번 명절에 느낀 점
남들은 내 인생에 관심 없을 지 몰라도 친척들은 관심이 많다
그 관심이 나에게 득이될지 안될지는 나 뿐만 아닌 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각자 모두 전달하고 싶은바가 따로 있다
그 전달하고 싶은 바가 서로의 이해관계에 일치할 확율은 높지 않다
내가 말 안하더라도 부모님이던 추측이던 모두가 이미 다 얘기들어서 알고있다
그렇기에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거는 이미 알고있을 거라 추측하고 있는 내용에 내가 이롭게 작용할 부분 만을 표현하면 된다
할머니는 외롭다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로 전직한 빈둥지 증후군을 가진 분들 또한 외로웠고 지금도 외롭다
누구나 각자 삶의 방식으로 가족이란 네트워크 속에 기여하고 싶어한다, 관심과 사랑 받기를 원한다
몸을 가누기 힘든 할머니 조차 음식할때 잔소리로서 존재감을 어필하고 싶어한다
그 노고를 조금만 들어줘도 사랑둥이가 될 확율이 높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죽음이 가깝다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일이라도 내가 철골에 맞아죽건 화재로 인한 사고던 교통사고던 죽을 가능성이 누구나 공평하게 있다고 생각하며(물론 모든 확율에서 내가 조금 높긴 하겠지만), 그래서 오늘이 소중하다.
나의 그런 생각을 남들은 보통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들 죽음 이후 (또는 가까운 몇일사이의 미래, 말이 나간 직후 10분내로 펼처질 미래 등)보다는 본인의 지금 순간의 감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들이 모른다 생각하여도 매번, 10년간 가족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친척들에게 사랑한다 둘도 없이 소중하다 “할머니 사랑해요~ 둘도없이 소중해요~ 지금 좀 바빠가지고 끊을게요~뿅~~!!“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이, 내가, 죽음이 다가왔을때 편한해질 수 있는 치트키라 생각해서, 실천중이며, 10년이 지나고서야 아무리 경상도여도 가족끼리 사랑한다는 말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아무리 감정이 좋건 안좋건 싸우건 싫건 그사람이 죽을때 마지막 말이 사랑한다는 그런 말이 아니길 했으면 하는 극단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이건 적극 추천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진 않는다
물론 그걸 내 잣대로 평가하는 것도 무례한 것이며
표현하는 것이 아닌 타산지석 삼아 다른 반대의 행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던 가족이던 같은 환경이었어도 각자의 프레임에 따라 배운것이 다르고 사소한 행동 차이가 이룬 여러 변화가 다르며, 그것이 모여 생존 방식을 터특하여 이뤄진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이득을 주었던 생존방식 이었을 것이며, 그렇기에 섣불리 제단하긴 이르다. 나의 신념과 맞지않은건 제외하고, 흡수할 부분만 흡수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 들을 얼마나 잘 하고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누구나 본인이 해당 네트워크에 기여하려는 목적과 행동 그리고 결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다른이를 까내리며 또는 도우며 도파민을 얻은 과거의 경험이 많을 수 있고, 참다보니 손해본 경험이라거나, 남들의 생각을 떠나 본인에게 이득으로 돌아온 경험 등 같은 상황에서 조차 배운 점은 누구나 다르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내가 배우고 생각한 것들을 잘 이행해 나가면 된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확립한다면 환경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공자는 그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30에 이립하여 자신만의 세계관 인생관을, 자립할 수 하고
40이면 불혹하여 본인에 인생관에 맞지 않은 일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며
50이면 지천명 하늘이 본인에게 원하는, 내가 태어나 이뤄가야할 일에 대해 명확해질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40,50이 되면 또 다르겠지. 물론 그걸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주변의 누구던 그런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막연한 바람이 있다.
그래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ego-coach 스텐다드 였다. 물론 질문 너무 난해해서 잔류인원이 없기도하고, 주변 조카와 대학생 동생들도 쓸 수 있도록 라이트버전을 만들고는 있지만 개발 목적이 나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비엠이 약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꿈을 이루는데 그게 뭣이 중하리, 뜻이 같다면 동참할 사람도 있으리라.
나는 어릴때부터 분해와 조립을 하려했다. 이건 천성이라 생각한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남에게 하는 행동과 사물과 학문을 최소 원리 단위로 분해하려했고, 해당 원리를 통하여 재조립을 하려 했다.
그것은 내가 기억 못할만큼 엄청 어릴때 부터 그러했다. 하다못해 동생이 태어났을때 서글프게 울면서 동생은 지금 어리고, 나보다 부모님을 볼 시간이 적으니 사랑을 더 받아야 하는 건 알지만 서운하다며 그럼 나는 어디에 어리광 부려야 하냐며 말했다는 부모님의 증언이 있지만 나는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학창시절엔 뭐든 2,3등 정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것 때문에 재능이 있다며 잘하는 걸로 알았지만 진짜 재능은 그것이 아니었다. 각각의 분야에서 분명한 재능의 벽이 있었다. 원리를 알고나니 더욱 느껴졌다. 나는 그저 해당 분야의 원리를 깨우친 시점이 남들보다 아주 조금 빨랐을 뿐 이라고. 방황했다. 무시당했다. 좌절했었다.
그때 이후로 이제 진정 이립에 도달하였나? 이제서야 지학으로서 그런 조각들을 인지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 또한 자만이며 그런 가오잡지 않겠다 다짐하였으니 다음에 듣고싶은 사람 있을때 깊이 얘기하던가, 최소한 오늘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혼나야한다.
하지만 내가 오늘 글을 쓰는 목적과, 남에게, 나의 글을 읽어보고 한사람이라도 인생의 목적을 되세겨 보고, 가족들에게 또는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한다“ 한마디를 부끄러움을 이기고 할 수 있다면 나의 자만에 대한 자기검열 보단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단 한사람에게라도… 그렇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절대 손해볼 일은 아니기에
내가 지금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쩌면 요 몇일 몰입이 아닌 집착을 하고있다 생각해서 미뤄진 일정에 대해 다른걸 얻었다 하는 변명일지 모른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보다 중헌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종종 가족이라거나 친구 연인에 대해 안정감과 가깝다는 이유로 소홀했는지 점검할 시간은 필요하다
가까울수록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가, 내가 없어진 이후 주워담을 수 없는 세상에서, 인생에 변명하지 않기위해 더욱 되세겨야한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