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사이는 어떨까?
글을 작성하기 앞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섞여 일하고 있다.
인간은 복잡한 유기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복잡한 유기체로 이뤄진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 은 통제 불가능 한 변수가 많다고 볼 수도 있다.
조직의 파워는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진심어린 연민에서부터 나온다는
관점에서 해당 글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연민이란?
이 글의 출발점은 ‘연민’ 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럼 연민의 정의부터 한번 살펴볼까?
연민이란?
공감과 행동의 결합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과 함께,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려는 실천적 태도를 포함합니다.
예: "연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뿐 아니라, 그 고통을 덜어주려는 행동까지 나아갑니다".
동정과의 차이
동정은 감정적 공감에 그치지만, 연민은 이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합니다.
예: "동정은 보여주기식 구원을 포함하지만, 연민은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연민과 동정의 차이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냥 막연하게 ‘불쌍한 사람을 위하는 마음’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하게 다르다. 연민은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인간관계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힘의 원천은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밖에 없는 사회
현대사회에서는 생각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하물며 사업이란 것도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본인의 사업 비지니스를 위해 협력을 해야할 파트너사,동업자,직원, 서비스 이용 고객 등등
본인 혼자서만 뭘 한다고 되는 사회가 아니란 것이다.
하물며 농경사회에서 협력이란게 필요했다.
결국 우리는 의도치 않게 사람과의 상호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사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물리적으로 같은 위치에 있건 다른 위치에 있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조직이라는 테두리안에 속해 있다.
미운놈 떡 하나 더 주지 않는다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미운놈 떡 하나 더준다.’
과연 이게 정말 맞는 말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드는 놈 떡 두개 더 준다'
오히려 이게 더 정확한 말이 맞지 않을까 싶다.
자 그렇다면 ‘마음에 드는 놈’ 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할까?
나를 위해 타인이 희생한다는 것
인간은 본인을 위해 희생하는 타인에 대해 악감정을 가질 확률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상적인 케이스라면 말 그대로 떡 두개를 주면 줬지 하나만 주지는 않을 것이란 거다.
재미있는 부분은 타인을 위한 희생은 곧 두터운 신뢰를 쌓게 해주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중에 하나란 것이다.
희생을 한다는것 곧 위에 언급한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는 감정에서 출발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으로 희생한다면
우리는 떡을 두개 받는 ‘마음에 드는 놈’으로 거듭 날 수 있다.
조직에 있어 연민의 감정이 주는 강력함은?
업무에 있어 혼자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일은 없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관찰되는 순간 상태는 정해진다.’ 라는 근거를 빌어
우리는 전부 서로를 사실 관찰하는 중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약 본인이 ‘전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현대사회에는 적합하지 인물이라 판단이 된다.
결과물을 낸다는 건 서로간의 협력을 통해 발생 되는 것이다.
파워풀하고 정교한 결과물이 도출 가능하려면 서로 위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령, 상대방이 뭘 하든 말든 내 것만 잘하면 된다는 마인드는 단기적으로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조직을 무너트리는 치명상을 입히는 무기가 된다.
책임 소재를 미루는 일, 남이 처리해 주길 바라는 마음, 이슈사항에 대한 공유의식의 부재 등등
하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위한다면 위에 언급한 이슈는 말할 것도 없이 사라지게 되며
건강한 조직으로 거듭 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진심이여야만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타인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여야 한다는것이다.
윗사람의 눈치, 나의 포지션에 대한 위기감으로 인한 행동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상대는 진심인지 가짜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가짜는 결코 진짜를 이길 수가 없다. 내가 행동만 그렇게 했다고 해서
위로를 삼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가는 환경
사람은 본능적으로 위협과 안전을 구분했다.
조직이 심리적 안전감을 줄 때 사람들은 발언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책임을 졌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인간은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고 나서야 비로소 본인의 진짜가 나온다.
내적 친밀감이라는 것은 사적인 영역의 교류를 의미한다.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사적인 영역의 교류를 한다고 해서 정치적 목적이나 본인의 위치를 견고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교류라고 생각하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정말 순수한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얻고 신뢰를 기반으로서의 서로를 위한 진심어린 희생을 통해
견고한 업무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 관점에서는 타인에 대한 능동적인 관심이 필요하며
경영관점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위한 희생이 빛을 발했던 실제 사례
당시 팀에서 진행중이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오픈 3일전 일부 기능 구현을 담당하던 담당자가 홀연히 잠수를 탔다.
당시 팀원들은 멘붕에 빠졌고 재빨리 담당자가 구현했던 코드를 검수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코드의 헛점이 많았고 구현돼있던 코드를 재활용하기에는 리스크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오픈 3일전 우리는 기존 구현돼있던 코드를 삭제하고 새롭게 가장 안정적인 코드를 짜기로 합의를 했고
주말동안 밤낮으로 영향이 갈만한 채널을 전부 확인하고 각각 담당해야 할 업무를 산정했다.
끊임없는 QA와 서로 놓칠만한 포인트를 공유했다.
결과적으로 오픈은 성공적이였고 운영상 문제가 있을만한 오류발생이 없었다.
이때 느꼈다. 당시 그때의 우리는 서로의 짐을 덜기 위해 능등적으로 나섰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냥 서로에 대한 연민이 들어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싶다.
내가 잘해서 서비스가 출시된게 아니라 우리가 잘해서 오픈됐다는 생각이 드는순간
묘한 기분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글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언제나 복잡한 유기체인 인간과 함께 일하고 있으며
내가 예상한대로 상대방으 움직여 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방에게 신뢰를 쌓아야만 하며
언제나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상대방의 진심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 그에 맞는 보답을 해야하는게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아닌가 싶다.
여러분은 현재 어떤 방식의 인간관계를 맺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