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이, 회사가, 사회가 알려주지 않는 것.
이 글은 okky의 가장 흔한 주제, 개발에 입문하려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입니다. 쓰다보니 길어져서 단락을 나눴네요.
몇살까지 살거에요? 몇살까지 일할거에요?
저는 서른에 커리어를 바꿨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커리어 8년차의 기획자였고, 나름 유명한 기업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떤 책을 봤는데, 거기엔 지금 세대는 의료 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 100살을 넘길것이고, 고령화로 인해 60살이 은퇴하는건 거의 불가능할거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죠. 하지만 당장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받으면서 커리어 쌓다가 60살에 은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자의든 타의든 다니는 회사에서 퇴직하고, 거기서 받은 퇴직금을 기반으로 자영업을 차려서 계속 일을 하고 있죠.
복잡한 얘기나 정치 얘기를 하려는게 아닙니다. 허황된 소리로 예언을 하려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앞으로 대부분의 우리는 최소한 이전 세대들보다 오래 살것이고, 최소한 이전 세대들보다 오래 일할겁니다.
그 책을 읽고 저는 우리 세대는 최소 130살까지 살거고, 최소 80-100살까지 일할거라 생각했어요. 그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나이 서른은 뭔가 시작하기에 아무것도 아닌 나이였고, 40살에 취업해서 40년짜리 커리어를 만들기에 10년 정도 투자하는건 할만하다고 생각했죠.
여러분의 인생 커리어는 총 몇년짜리 경력이 될까요? 20년이 될수도, 50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관점, 50년 이상의 커리어를 구상해본 적 있나요?
물론 지금 취준 중이거나 저처럼 중도에 커리어를 바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조급할 수 있습니다. 당장 취업해서 적당한데서 적당히 일하면서 “경력을 쌓는”게 지상과제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경력은 공짜로 쌓이지 않아요.
아마 이 얘기는 취업하기 전엔 공감할 수 없는 얘기일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실력에 걸맞는) 경력은 공짜로 쌓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력서에 추가하는 경력은 회사를 다니기만 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동으로 쌓이겠죠. 하지만 본인이 해당 연차에 걸맞는 직무를 수행하고, 적극적으로 직무 능력을 키우고, 그 다음 단계에 대한 일을 배워나가지 않으면 그 경력은 물경력일 뿐입니다.
앞서 말했듯 여러분의 커리어는 짧으면 20년이고, 길게는 50년 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한 회사에서 하는 일만 하다가 은퇴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아무도 그럴거라 예상하지 않을겁니다.
10년쯤 경력을 쌓이면 보이는게, 같이 시작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예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롤모델로 삼은 부장급, 팀장급 선배들 중 더 높은 자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올라갈수록 점점 문이 좁아진다는걸 느끼죠.
경력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느낄 때, n년차라는 수식어는 족쇄가 됩니다.
비전공자는 좋은 회사를 갈 수 없습니다.
아마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아주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주변의 수많은 사례를 들 수도 있겠죠. 논란이 더 커지기 전에, “전공자”를 정의해보죠.
전공자는 뭘까요? 수능치고 스무살에 4년제 대학의 컴공을 전공한 사람만이 전공자는 아닐겁니다. 그럼 저같이 서른 넘어서 학위 딴 사람은 아닐테닐까요.
그럼 4년제 대학의 컴퓨터 공학 전공자만 전공자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컴퓨터 과학, 수학 등 컴공과 관련된 학과들은 무수히 많으니까요.
제가 이 글에서 정의하는 비전공자는 학위 유무와 상관없이, 컴퓨터 공학 지식을 갖추지 못한 자입니다. 아마 오키를 비롯해서 그동안 많이 봐오셨을텐데, 4년제 컴공 졸업하고도 국비교육 받는 사람들도 많고, 반대로 국비교육 받고도 스스로 갈고 닦아서 좋은 커리어 쌓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종합하면,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운좋게 어떤 회사에 취업한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언젠간 도태된다는겁니다. 이는 비단 개발자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 가능합니다.
물론 컴퓨터 공학 지식을 갖추지 않은 채로 개발이 아닌 다른 분야, 혹은 융합된 분야를 택해서 좋은 회사 가고 잘 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것도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기초는 학습의 효율을 결정합니다.
제가 4년제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2년제 전문대에서 8개월간 컴싸를 배웠습니다. 자바로 헬로 월드부터 OOP까지 나름 선행학습을 했다 자부했지만, 4년제에 들어가니 그 8개월 치 분량은 단 한달만에 소진되었습니다. 구현 방법만 배우고 넘어갔던 개념들의 본질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헤매게 되더라구요.
이런 경험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공부하다 보면 강의만으론 부족해서 다른 명문대, 버클리나 MIT처럼 온라인으로 정리 잘 해둔 과목들을 찾아서 공부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데이터 구조/알고리즘 과목을 들으면서 MIT의 비슷한 과목을 들었는데 딱 한 시간만에 정적 배열, 동적 배열, 링크드리스트, 분할 상환 분석까지 진도를 뺍니다. 제가 몇주에 걸쳐 배우던 내용을 그들은 단 몇시간만에 핵심만 잡고 넘어가더군요.
이 글은 재능 얘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물론 그중엔 천재들도 있겠지만, 명문대생 모두가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익숙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처음 보는개념을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탄탄한 기초입니다. 기초 지식을 충실히 갖추면 그것을 기반으로 한 다음 단계의 이해는 더욱 빨라질 수 있는거죠.
수학을 떠올려보세요. 덧셈을 배우지 않고 곱셈을 배우면 어떨까요? 1차 방정식을 모르는데 2차 방정식 문제를 푸는건요? 책을 n회독 해서 달달 외워서 풀 수는 있을겁니다. 하지만 응용 문제가 나오면, 조금 다른 상황이 주어지면 아마 손도 대지 못할겁니다. 기초 원리를 모른채로 공식만 외웠기 때문입니다.
개발도 정확히 같습니다. 많은 입문자가 저지르는 실수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드는데 급급하다는겁니다. 프레임워크, 랭귀지 사용법을 익히고 시키는대로 튜토리얼을 따라하면서 무언가 찍어내는걸 공부라 생각합니다. 이건 정확히 덧셈과 뺄셈의 원리를 모른 채 구구단만 외우는 것과 같습니다.
왜 이 코드가 이렇게 동작하는지, 메모리는 어떻게 관리되는지, 클라우드 서비스의 원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처리되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기능 구현에만 집중하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때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학원이, 회사가, 사회가 알려주지 않는 진실
결국 이 글의 제목으로 돌아와서, 세상은 여러분에게 기초의 중요성, 가치에 대해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저 6개월 국비교육을 받으면 연봉 6천이 기다리고 있다고 유혹하고, 당장 이번달 월급 받으려면 눈에 닥친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윽박지르죠.
학원은 단기간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취업시키는 것이 지상목표이고, 회사는 당장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성과를 낼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커리어를,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개발업계가 물론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금 나오는 LLM이 대중에게 제대로 선보인게 아직 3년도 안되었고, 그때 나온 ChatGPT 초기 버전은 이미 레거시를 떠나 아무도 떠올리지도 않죠. 이런 변화 속에 도태되지 않는 유일한 자산은 변하지 않는 기본기입니다.
커리어를 바꾸려고 고민하는 분들은 조급하실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남들보다 뒤쳐진 것 같고, 하루라도 빨리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경력을 쌓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더 길게 바라보셔야 됩니다. 반대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6개월을 공부해서 취업이 가능하다는건 둘 중 하나를 의미합니다. 하나는 해당 사람이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져서 6개월만에 남들 4년 이상을 따라잡을만큼 특출나다는 것, 아니면 다른 6개월 공부한 사람에게 대체당하기 쉬운 분야라는거죠. 기초 없이 6개월 공부한 곳에서 어떻게 연봉을 올리고 승진을 할 수 있을까요? 회사 입장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기 쉬울텐데요.
물론 많은 분들이 취업 이후에도 끝없이 노력해서 더 나은 커리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 역시도 검정고시에 전문대 자퇴한 커리어로 시작해서 대기업까지 가봤으니까요. 저는 누구보다 일찍 커리어를 시작해서 밑바닥에서 기어올라가봤고, 반대로 누구보다 늦게 커리어를 바꿔서 명문대 졸업하고 빅테크도 가봤는데, 솔직히 검정고시 딱지 붙은채로 아둥바둥 올라가는것보다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된 길을 가는게 훨씬 쉬웠어요. 이상한 환경에서 가스라이팅 당할 필요도 없고,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받을 일 없이 학업에 집중해서 기초를 다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더 나은 환경에서 시작하는게 더 쉬운 길이라 생각합니다.
요약하면, 이 글은 학위를 따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학원이든 독학이든, 시간을 투자해 기초와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며, 단순한 자격증이니 학위를 “수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니 모두가 제가 했던 길을 따라할 순 없고 그렇게 한다고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조급해져서 당면한 것만 처리하기에 급급하지 말고 좀더 시야를 넓게, 커리어를 긴 관점에서 보시고 준비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