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혁신과 임금 하락
AI로 인한 생산성 혁신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생산성 혁신은 해당 업계의 기업과 종사자에게는 날벼락입니다. 얼마나 날벼락인지 정량적으로 계산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벼베기를 모델로 하여 추수용 트랙터가 등장하면 낫질하던 농부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뒤에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말한 "노동가치설"과 "사회적 평균 노동"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겠습니다. 장기적으로 업종에 상관없이 "평균적으로 투입되는 단위 노동량" 에 대한 임금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참치잡이 1시간 노동과 발전소 1시간 노동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동이 투입되는 것은 사회적인 자원 배분의 결과이므로, 단기적으로는 업종간 노동 임금이 다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업종이 다르더라도 노동 시간의 가치는 동일하게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 즉 동일 노동 시간 동일 임금이 노동가치설의 핵심 주장입니다. 굉장히 허술하면서도 경제학적인 사고실험에서 유효하고 중요한 가정입니다.
이 마을에는 5명의 농부가 벼베기를 합니다. 평균적인 농부가 1시간에 1단위의 벼를 벤다고 할 때, 일거리의 총량은 50단위입니다. 농부 5명의 벼베기 능력은 시간당 5단위입니다. 트랙터 도입 전에는 모두 동일한 노동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각자 10단위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처리 단위당 임금이 1만원이라고 하면 각자 10만원의 소득을 가집니다.

이제 농부 5명 중에서 갑이라는 농부 1명이 트랙터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랙터는 수작업의 10배 속도로 벼를 벤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농부 5명의 시간당 벼베기 능력은 시간당 14 단위(=10 x 1명+ 1 x 4명)가 됩니다. 50단위의 벼베기에 걸리는 시간은 10시간에서 3.6시간(50/14) 으로 단축됩니다. 농부 갑의 처리량은 35.7 단위이고 나머지 농부 4명의 처리량은 3.6 단위입니다. 만약 단위당 1만원을 받는다면 농부 갑의 소득은 35.7만원으로 상승하고, 다른 농부 4명의 소득은 3.6 만원으로 하락합니다.
이렇게 소득이 10만원에서 3.6만원으로 하락하는 것이 생산성 격차에 따른 시장 지분(market share) 감소로 생기는 1차 피해입니다.
하지만 피해는 1차에 그치지 않습니다. 해당 업종의 평균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피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에서 사회적 평균 노동이 임금 산정의 기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생산성 향상은 생산 단위당 임금을 떨어뜨립니다. 장기적으로 동일한 작업에 드는 노동이 줄어들면 작업당 단가도 내려갑니다. 즉, 50단위를 3.6시간에 처리할 수 있게 되면, 50단위를 10시간에 처리하던 과거보다 단위당 임금이 내려가고, 장기적으로는 과거 임금의 36%로 떨어지게 됩니다.
50단위의 벼베기를 할 때 과거에는 50시간이 들었기 때문에 시장가격이 50만원이었지만, 3.6시간 만에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후의 시장가격은 5명x3.6시간에 해당하는 18만원으로 수렴합니다. 이때 농부 갑의 소득은 12.9만원이 되고, 나머지 4명의 소득은 1.3만원이 됩니다. 이것이 생산성 향상에 따른 필요 노동시간 감소에 의한 2차 피해입니다.
재미있게도 혁신의 주체인 농부 갑의 소득은 고작 10만원에서 12.9만원으로 30% 정도 늘어날 뿐인데, 혁신의 희생자인 나머지 농부들의 소득은 10만원에서 1.3만원으로 87% 감소합니다. 자유 시장의 기술 혁신은 단맛보다는 쓴맛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혁신의 주체들은 시장가격이 아닌 독점가격을 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