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주는 곳이 있구나.
세상물정 모르고 거만떨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입으로 입사 후 3년차에 간신히 주임 직급 달고,
5년차가 되어 간신히 대리 직급 달고,
그 후 부터는 과장, 차장, 부장까지 1년에 한 직급씩 달아 동기들 보다 두직급이 높았으니 거만하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구멍가게였으니 가능했던건 생각도 안하고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 쫒겨날까봐 벌 벌 떨때도
힘들게 야근하는 직원들 총대 매준다며 대표와 언성 높이는 일이 몇일에 한번이었으니
되돌아 보면 정신 나가도 한참 나간게 분명했던것 같습니다.
그런 거만한 시기에 하필이면 어느 세상 물정 모르고 설치는 저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능력있는 사원을 영입하려는 기업간의 암투를 소재로 한 영화이고, 그 주인공이 마치 저라는 착각까지 했으니 제정신이 아니었던게 분명합니다.
구멍가게의 연봉협상이라는게 정식 절차도 아니고 그저 대표가 불러서 내년에 얼마줄께 하면 조금 더 달라고 조르는게 전부인데
영화속의 장면을 생각하며 50프로에서 10원도 앙보할 수 없다고 했고
40프로 제안에 턱도 없는 소리 말라며 때려 치우고 나왔습니다.
막상 나와 보니 영화 속의 장면은 직장 경력도 없이 뇌피셜만 갈겨대는 3류 작가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음에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미래를 걱정해도 모자랄 백수에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건까지 겹쳤습니다.
그만 둔 회사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심각한 지경이 되었는데 예전에 제시했던 기준을 맞춰 줄 테니 프로젝트 하나만 끝내달라는 제안을 받았으니
착각의 늪에 점 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그 착각은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이미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우여곡절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게 될때마다 좌절하고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고 나서야 불러주는 곳이 생겼습니다.
철없던 시절 영화에서 나오던 그런 해드헌팅과는 완전히 다른 부름입니다.
프로젝트가 심각한 상황이고, 오겠다는 사람은 없고, 떠나겠다고들 하는데 제발 도와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이요.
게다가 보수마저 미안할 정도 밖에 안되니 거절해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요.
하지만 이런 저런 풍파를 겪어 본 저는
불러줘서 감사하다.
마무리 한다는 자신이 있는건 아니지만 진심으로 최선을 다 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제 전 그 소굴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