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는 서로 빰을 후려갈겼지만, ep6
현실에서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꿈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항상 소극적으로 대했는데, 이는 무엇보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예쁜 데다가 저돌적인 그녀가 좋았다. 특히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를 입고 온 날 이면, 앞섶이 벌어질 듯 한 그녀의 둥근 가슴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성호를 긋고 주를 찬양했다.
평소 그녀는 혈색이 좋지 않았다. 그건 과음과 수면 부족 때문이었고, 한참 놀기에도 바쁜 20대였기 때문이었다. 스물여섯 좋은 나이였다.
한번은 옆자리에서 코딩하는 그녀의 왼팔 안쪽 타투가 보였다. 거기에는 ‘주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주소서'라고 새겨 있었다. 너무 자세히 응시한 탓에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재빨리 시선을 돌렸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는 그를 보고 환히 웃었다. 그러자 가지런한 이빨과 더불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뻤다. 그 웃음에 용기 내어 물었다.
성경 구절 같은데 교회 다녀요?
아니요, 그냥 문구가 맘에 들어서요.
그녀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짓고 코딩에 열중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제부터는 연애 이야기가 주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서술자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조용히 지켜보기로 하자.
담배 한대 어때요?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가 팔꿈치로 살짝 건들며 물었다.
네? 갑작스러운 물음에 대답하고 그들은 사무실을 나와 1층 흡연장으로 갔다.
개발자 어때요? 적성에 맞아요? 언젠가 사수에게 받은 질문 그대로를 그녀에게 물었다.
저는 이곳 판교가 좋아요. 출퇴근 시간의 복잡함과 오고 가는 사람들을 봐봐요. 젊고 활기차잖아요. 아, 개발자요? 적성요? 그럼요. 저는 주의가 산만한데, 코딩할 때만큼은 몰입할 수 있어 좋아요. 무언가 몰입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에요.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죠. 대리님은 어때요? 적성에 맞아요?
사실 그녀가 하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며 말하는 그녀 모습 이외는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았다. 맞아, 나도 그래, 누군가에게 몰입되는 건 처음이고 나에게는 축복이라 생각해.
대리님!!
아, 적성요. 저는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 개발 이외는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죠. 그래서 적성에 맞냐 안 맞냐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하는 거예요. 꿋꿋이. 아, 맞다. 제가 제일 잘하는 게 뭔지 알아요? 제가 제일 잘하는 건 뭐든지 꾸준히 하는 거예요. 일도, 운동도, 게임도, 독서도.
멋지네요. 대리님.
하하, 뭘요. 아, 그런데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요?라고 그는 용기 내에 조심스럽게 물어봤고 그녀는 그럼요, 당연히 있죠,라고 답하며 환히 웃었다. 그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