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세 번째 이야기
아버지는 3년 전 폐암을 진단받고 지금까지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다. 고령으로 이제는 더 이상 항암치료받는 것에 버거워 하셨고, 그만 받고 싶다고 하셨다. 너무 힘들다. 치료받고 나면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 이제 그만하고 싶어. 우리는 무엇이 아버지를 위한 것인지 고민했고, 아버지 뜻에 따르기로 했다.
아버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에게 공부해라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셨다. 자신만의 교육관이나 신념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냥 방치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 시기에는 당장 먹고사는 것이 중요했고, 쉬지 않고 일을 해야 가능했기에 자식들 교육에는 신경 쓰지 못하셨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도와주셨고, 그냥 스쳐가는 말 한마디도 기억하시곤 기회가 되면 해 주셨다. 나의 부모님 세대는 과묵했고, 자식들에게 사랑 표현이 서툴렀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내가 가장 기뻐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대학 합격자 발표 날, 막 일을 마치신 아버지는 현관 문을 열고, 나를 보며 어떻게 됐냐고 물었고, 나는 합격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너무 기뻐하셨고, 나는 내가 합격한 것보다 아버지 얼굴에 나타난 주체할 수 없는 기쁜 모습에 더 기뻤다. 지금도 그때의 아버지 모습이 나에게는 가장 기쁜 순간으로 남아있다.
3월의 첫째 날, 아직은 쌀쌀한 첫 등교길에, 아버지는 아직 춥다. 따뜻하게 목도리하고 가라, 하셨고, 그때 들은 그 말은, 이제 앞으로는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