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이별
이걸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테스토스테론 성호르몬을 가진 자라면, 탄력 있고 육감적인 데다 긴 생머리에 큰 눈, 그리고 작은 얼굴에 반하는 168cm의 큰 키의 여자를 무시할 순 없을 테다. 더군다나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여자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직업군인인 하사관 남자친구가 있었다. 남자친구가 있었으나 그녀는 권태기를 겪고 있었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그때 내가 나타난 것이다. 이건 아마도 하늘이 준 기회이며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
몇 번의 밀당을 하며 만남을 이어오던 중 회사 회식이 끝날 무렴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다.
이 말을 듣고, 아냐, 그래도 집에는 가야지,라며 점잖게 거부한다면 그건 병신, 그것도 병신 중에도 상병신이나 다름없다.
첫 한 번이 어렵지 그 이후로는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자취방을 오가며 많은 낮과 밤을 함께했다. 피끊는 청춘 남녀가 자취방에서 할 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그렇게 계속될 것만 같았던 나날들이 어느 순간 삐거덕 대기 시작했다. 별다른 낌새 없이, 어쩌면 나만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갑자기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연락 없이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이제 연락하지 마, 그만 만나, 나 임신했어.
응?
잠깐 생각해 보자, 임신을 했는데 왜 그만 만나자고 하는 걸까. 전화통화하는 짧은 시간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불현듯 스치고 지나간 과거 기억이 떠올랐다. 만나는 동안 일주일에 한두 번은 친구 집에 놀러 간다, 고향 집에 다녀온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만남을 기피했다. 그날은 헤어진 줄 알았던 이전 남자친구를 만났던 거였고, 배란기와 관계 일자, 임신 주수를 따져보니 이전 남친이었던 것이다.
나는 두 번 놀랐다. 한번은 깜쪽같이 속이며 양다리를 걸쳐 만났다는 것과 다른 한번은 임신 이야기를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마치 처음이 아니라는 듯. 그렇게 헤어졌다.
그런데, 하지만, 또다시,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서로가 잊힐만한 시간이 흐른 후 느닷없이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연찮게도 전화를 받는 시점은 버스 안에서 그녀의 자취방 근처를 지나고 있을 때쯤이었고, 맞아, 예전에 그녀가 여기 살았지,라며 그녀를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 한 통의 전화로 우린 다시 만나기로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