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EP2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나는 유학생 부부가 운영하는 민박집에 머물렀다. 여자는 임산부였고 이미 배가 불러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예민한 상태라 숙소 생활에 조심해야 했다. 지내는 동안 소리 없이 나갔다가 소리 없이 들어오곤 했다. 숙소는 작은방 하나에 2층 침대가 3개 있었고, 숙박 인원은 나와 여자 둘이었다. 그땐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와보니 2 대 1이라는 미묘한 비율이 나에게 반복되었다. 한 여자는 장기 투숙자였다. 비록 비쩍 말랐지만, 금테 안경을 썼고 조금은 지적인 면도 있었다. 다른 여자는 작은 키에 매우 활발했고 워낙 부지런해 몇 번 마주치지 못했다.
그날은,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보고 일찍 귀가해 혼자 쉬고 있었다. 마침 장기 투숙 여자가 들어오더니, 오늘 어느 시골 농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당시 마을 이름을 말했지만 어디인지 기억이 없다. 그녀는 와인에 대해서 아냐고 물었고, 난 모른다고 답했다. 어쨌든 와인 농장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마셨던 와인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말하는 목소리가 끈적끈적했다. 그러고는 내일 같이 가보지 않겠냐며 물었다. 한눈에 봐도 많이 취해 보였다. 취기를 빌어 나를 유혹하는 건지, 정말 취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여러 상황을 비추어볼 때 내게 뭔가 원하는 눈치였다. 잠깐 흔들리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피곤했다.
"글쎄요. 내일은 계획이 있어 힘들 것 같네요. 잘 자요."
그녀가 답하기도 전에 나는 2층 침대로 올라와 자는 척했다. 그녀는 나에게 뭘 원했을까. 말동무였을까. 술친구였을까. 아니면 그 이상이었을까. 아마도 이 모든 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지나치게 저돌적이고 대담했다.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프랑스는 대부분 혼자 다녔다. 여행의 묘미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유로운 몸과 마음으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함께 마음껏 즐기는 게 여행의 묘미다. 하지만 나는 잘 못 정한 숙소 때문인지 프랑스에서는 그러질 못 했다. 그래도 이미 영국에서 일주일을 보낸 터라 여행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여행의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혼자여도 나름 괜찮았다. 음. 괜찮았다고 했지, 즐거웠다고는 하지 않았다. 나는 꺼림직하고 미지근한 프랑스를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 독일로 향했다.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트 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