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한참 지난 이야기다. 2004년 9월,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일이다. 40일 여정으로 유럽 10개국을 혼자 돌아다녔다. 맞다. 왜 유럽여행을 시작했는지 부터 밝혀야겠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큰 모험을 하는 사람을 없을 테고, 나에게는 분명한 동기가 있었다.
1년 정도 만난 것 같다. 사람이 눈이 멀면 보이는 게 없다는 걸, 그년을 통해서 알았다. 난 어리숙했고, 세상 물정을 몰랐고, 멍청했다. 만나는 동안 단물만 쪽쪽 빨렸고,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사이 내 정신은 시나브로 피페해져 갔다.
"나 지금 만나는 사람이 더 좋아, 그냥 연락하지 마."
그녀는 다니던 회사 유부남을 만나더니, 나에게 일방적인 통보 후 연락을 끊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머릿속은 온갖 상념에 먼가 변화가 필요했다. 끝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먼 곳으로, 그렇게 유럽으로 떠났다.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컸고 무서웠다. 그곳에선 철저히 혼자였다. 아는 사람도 없고, 대화가 되는 사람도 없고, 낯선 장소에 그렇게 버려졌다.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내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국내에서 사 온 여행 가이드북 하나였다. 가이드북에 의존해 한인 민박집을 찾아 일주일간 머물렸다. 그곳엔 같이 여행 온 친구 둘이 있었다. 영국 여행을 그녀들과 같이 했다. 뜻밖에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여기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희망도 가졌지만, 아쉽게도 그녀들은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다. 손에 낀 반지를 보고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그녀들과 나, 이렇게 셋이서 영국 곳곳을 돌아다녔고 몇 번의 선을 넘을 뻔한 일도 있었지만, 나는 자제력을 잃지 않았다. 선을 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대부분 시간을 그녀들과 함께 했지만, 서로 뜻 맞았던 건 아니였다. 친구 사이지만 그 둘은 서로 가고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달랐다. 다툼이 잦았다. 어쩌면 친구사이라서 더 그런거라 생각했다. 이후 더 이상 계속 같이 다니기 부담스러워 따로 나왔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자유로이 돌아다녔다. 하나보단 둘, 둘보단 셋이 낫다고들 하는데, 적어도 난 아니다.
이번엔 같은 숙소는 아니지만, 케임브리지를 여행하며 유학생 커플을 만났다. 여자애는 이쁘장했고, 남자애는 공부 잘하게 생겼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었다. 왜 내가 이 커플 사이에 끼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각종 할인을 받기 위해 같이 한 걸로 기억한다. 남자애는 여자애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열심이었다. 중간중간 간식도 사주고 경비도 내줬다. 하지만 여자애는 한번씩 호응해줄 뿐 관심없어 보였다. 안타까웠다. 자신이 좋아서 한다는데 뭐라 하겠냐마는 뒤늦게 후회할게 뻔히 보였다. 이 친구도 훗날 알게 되겠지, 내가 당한 것처럼, 단물 쪽쪽 빨리고 버려질 거란 것을. 사람 마음 가지고 거래하는 여자의 마음을. 이들 커플과의 만남은 캠브리즈를 벗어 남과 동시에 헤어졌다. 나는 다음 목적지 인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버킹엄 궁전

트라팔가 광장

그리니치 천문대 GMT

문제의 그 커플

파리로 이동할 유로라인 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