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발자다.
운이 좋았다. 한 마디로 시기를 잘 타고났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꼬였던 내 인생이 이제 살만해졌다.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 높은 목표도, 물려받은 재산도, 그렇다고 잘생기지도 않았다. 당연히 여친도 없다. 늘, 열심히 한다고는 하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방구석 박혀 1년 넘게 지내다가 우연히 국비 모집 글을 보고 국비를 다녔다. 머리는 나쁘지 않아, 그냥 남들 하는 만큼 했다. 지금 생각해 보건데 나름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국비를 나와 흔하디흔한 si 업체에 손쉽게 취업했다. 시간이 흘려 6년 차에 코로나 개발자 붐이 일자, 서비스 기업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나는 세상이 쉽게 보였다. 나의 노력에 비해 얻은 것이 컸기에 모든 게 만만해졌다. 이제 슬슬 거만해지기 시작했다. 먼저 구직자들을 보며 노력이 부족하다며 일갈했고, 나보다 높은 경력자들에겐 꼰대라며, 레거시 기술만 할 줄 하는 늙다리라며 신나게 까데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뭐가 된듯한 야릇한 쾌감에 젖어 이성의 끈마저 놓아버렸다. 결국 어느새 내 주위 사람들은 하나둘씩 나를 멀리하게 되었고, 나는 또다시 혼자 방구석에 남게 되었다.
이제 자존감은 저 어두운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아직 온라인 세상이 남았고, 현실에서 받는 모욕과 치욕은 온라인에서 풀면 됐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커뮤니티를 돌아다닌다. 팩트로 조져 준다며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다. 나는 개발자다. 나는 어딘가 아픈 인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