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주69시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신문들이 주 69시간 입법예고를 재검토한다는 기사를 일제히 쏟아내고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
...입니다.
근로시간 단축 역사
아주아주 간략히 노동시간을 규정해온 법안들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953년 1주 48시간을 규정함
1989년 1주 44시간으로 개정함
2003년 1주 40시간으로 개정함
2018년 주당 최대 52시간(40시간+초과 12시간)으로 못박음(초과 근무는 노동부의 허가를 받아야 함)
1~3과 4의 차이는 "강제성"에 있습니다.
1,2번은 사실상 있으나마나한 법이었고(아무도 안지킴 처벌도 없음),
김대중 정부때 학교와 관공서부터 주 5일제를 시행하면서 이후 노무현 정부때 40시간으로 개정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법적 근무시간과 무관하게 주당 70시간 넘게 일하는 곳이 널리고 널렸었습니다(당시 카더라 얘기로는 90시간 일한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음).
그러다 2009년 아주 중요한 사건이 조용히 터집니다.
성남시 환경미화원 임금청구 소송
이것도 다 쓰면 너무 길어지니까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기사에서 히스토리만 보시면 되고...
[연합뉴스][환경미화원-성남시 휴일근로수당 중복가산 사건 10년 일지]
사법부의 최종 판단에 따라 주당 최대근로시간이 바뀌면서 커다란 사회경제적 파장을 낳을 수도 있는 만큼 대법관들도 양측의 주장을 신중하게 청취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이어갔다.https://www.yna.co.kr/view/AKR20180118170300004
2009년 성남시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토, 일요일 일한 수당을 적게 줬다고 소송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환경미화원들이 이 소송에서 이기면 산업 전반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미치는지라, 의도치 않게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었습니다.
1, 2심에서는 미화원들이 승소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대법원에서 계속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다가 소송 10년만인 2018년에야 대법원이 파기환송해서 되돌려 보냅니다.
이 소송은 애초에 노동법 자체가 불명확해서 벌어진 소송이었습니다(해석하는 사람 마음대로임).
워낙에 파급력이 커서 사법부도 판결을 미루고,
여당인 보수당이 입법으로 해결해줘야 하는데도 사법부가 알아서 똥 치우라고 책임을 회피합니다.
판결도 안나오고, 법안 개정도 없이 그냥저냥 뭉개다 정권이 바뀌고 2018년에 법을 개정하면서 제멋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립니다.
여기서의 1주일은 월~금요일 5일이다.
주당 40시간 + 최대 12시간만 근로 연장 허용한다.
그 외에는 불법임
기득권의 반발
여기에 당시 정부가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끌어올리는 등 기득권 집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정책들이 추진되자,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사용자측이 반발합니다. 이들의 불만을 제도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탄력 근무제 도입을 "추후에 논의하기로 함" 정도로 명문화해줍니다.
노비들 야근 못시키면 회사 망한다고 난리치는 회사 측 입장을 고려해서 회사 규모별로 유예기간을 폭넓게 지정해주고, 주 52시간제 적응할 시간을 줍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회사 쪼개기 등 집요한 꼼수로 대응해왔습니다(간혹 면접 본 곳과 일하는 곳이 다르다는게 이때문에 벌어진 것)
그리고 작년에 정권이 바뀌자 노동 정책도 180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술 좋아하시는 그분이 당선되자, 그분의 이름을 빌려서 조직된 단체로 전문위원들 10여명의 면면을 보면 애초에 노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상호 경상대 교수(법학),
김인아 한양대 보건대학원 교수,
박철성 한양대 교수(경제학),
송강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상민 경희대 교수(경제학),
이정민 서울대 교수(경제학),
전윤구 경기대 교수(법학),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사회복지학)이렇게 노동계는 배제한 상태로 5개월동안 뭔가를 열심히 생각해낸 것이 지금 나돌고 있는 69시간제이고, 이는 예전부터 대기업 집단의 요구를 토씨 하나 안고치고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이렇게 2023년 12월 12일 연구회가 "권고안"이랍시고 최종판을 내놓습니다.
[고용노동부]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권고문
지난 2022년 6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따라 7월 18일 노동시장 개혁 전문가 논의기구인 ‘미래노동시장 연구회’가 발족, 미래 노동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그리고 이어지는 노동부장관의 충성맹세
[2022-12-16] 이정식 장관,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 토대로흔들림없는 노동시장 개혁 완수 의지 표명
5개월 간의 연구를 통해 ... 연구회 전문가들에게 감사...
대통령이 ‘권고문을 토대로 흔들림 없는 노동시장 개혁 추진’을 강조이후 노동부는 신문들을 모니터링하며 열심히 기사 내용을 반박하느라 매우 바쁜 3개월을 보냅니다.
2022-12 일 몰아치기 아니다 반박
2023-03-06 주 52시간제 개편, 주 최대 69시간 일하고 장기휴가 가능
2023-03-06 (반박) 한겨레 등, “주52시간에서 주80.5시간 나라로...‘원없이 일하라’는 정부” 등 기사 관련
2023-03-07 (반박) 노컷뉴스, 尹 “주120시간 노동” 헛말 아니었다, ‘사흘 연속’ 밤샘노동 가능토록...尹정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 기사 관련
2023-03-08 (반박) 경향신문, “‘주69시간’ 공식화에 직장인들 “다시 그렇겐 못 살아”” 기사 관련
2023-03-13 (반박) 한겨레 등, “나흘내내 62시간 일하다가 숨졌다” 기사 관련전면 재검토 하라!!
이렇게 이 악물고 일해온 노동부 장관을 엿 먹이는 기사가 오늘부터 일제히 쏟아지는 중입니다.
[뉴스1] 대통령실 "주당 최대 근로시간, 노동 약자 여론 청취 후 방향"
[연합][속보] 대통령실 "주 최대 근로시간, 여론 청취한 뒤 방향잡을 것"
[뉴시스] '주69시간 근무' 제동 건 尹…근로시간 개편안 전면 손질되나
[MBC] '주 69시간' 개편안 제동‥"MZ 세대 의견 들어라"
[동아] “장기휴가 비현실적” “공짜야근 우려”…'주 69시간' 손볼듯
[조선] 김기현 “주 69시간은 너무 과도한 시간...공감대 형성 과정 매끄럽지 못했다”
[중앙][사설] 근로시간 유연제, MZ세대 의견 끌어안아라생각보다 국민들 반발이 상당하니 한발 물러서서 대통령은 발을 빼고 숨고르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작년 12월 권고안을 놓고는 "흔들림없이 추진하라"고 말해놓고 상황이 여의치 않자, 대통령님께서 52시간제를 위협하는 사특한 무리들을 물리치시었다는 뉘앙스로 기사들을 쏟아냅니다.
재검토 지시가 구라인 이유
이 사안은 일개 바지 대통령이 검토해서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많은 하청 업체를 거느린 대기업 집단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어떻게든
졸라 오랜 시간
졸라 적은 임금으로
일을 시킬 수 있는 법적 환경이 필요합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하청업체들 단가로 올려줘야 하고, 생산 물량이 늘면 2~3주 연속으로 야근 몰아서 시켜야 생산비를 아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요하게 노동 환경을 10여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하는거고,
이런 기득권의 집요함은 대통령이 아닌 국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대통령실이 69시간을 한다고 말해본들 죽었다 깨어나도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 52시간제가 폐지될지, 유지될지는 국회에 물어야 하고, 여당인 국짐당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술 좋아하시는 그분이 치매에 걸려서 "나 69시간제 안할래" 이렇게 얘기해본들 국짐당이 다수당돼서 법안 개정하면 그걸로 끝인겁니다.
그래서 전면 재검토 지시하라는 얘기는 하나마나한 얘기고, 진정성도 없으며, 대통령이 감당할 사안이 아니라는겁니다.
비가 쏟아지나 처마 밑에서 잠깐 피하자, 이정도 의미밖에는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