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입사 2주만에 퇴사합니다.
개발팀 팀장으로 입사했는데 그나마 하나있는 팀원인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곧 퇴사한다고..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팀원 없는 팀장으로 독박 좀 쓰겠구나 싶었습니다.
노션과 PC에 남겨진 인수인계 문서를 보자니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있거나 없는 내용들도 있어 맨땅에 헤딩하며 세팅과 파악을 해나가고... 이 과정에서 이 파트의 전임자들이 최근 1~2년 사이에 두세번은 바뀐 것을 확인했습니다. 느낌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면접 때 대표가 최근에 인원 정리를 했다는 것을 듣긴 했지만 실제로 파악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인원들이 짤려나간 것을 확인했고, 대표를 비롯한 창업멤버 일부만 고인물 취급 좀 받고 있더라구요. 1년 이상 재직한 직원이 손에 꼽힐 정도...
사실 실업급여 받고있던 와중에 오퍼가 들어와서 별 생각없이 면접만 보려고 했던건데, 그 쪽에서는 저의 입사를 원하더라구요. 허나 처우가 마음에 안 들고 평판이 별로인 듯 해서 두 번이나 거절했지만 그 때마다 계속 연봉을 올려서 재오퍼를 주더라구요. 기대감보다는 뭔가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지만 어차피 실급 받는 도중이기도 하고 일단 들어갔다가 정말 아니다 싶으면 얼른 도망나와서 재실업신고를 해야지 싶었는데 그게 예상대로 되버렸네요.
결정적인건 지난 주 금요일에 사이트가 갑자기 딜레이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창업멤버이자 사업부장이자 소위 넘버 2로 통하는 사람이 제게 구사하는 태도가, 그런건 난 모르겠고 무조건 되게만 해달라는 식으로 나오더라구요 (에티튜드에 문제가 있어보였음). 크리티컬한 이슈인만큼 그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껏해야 입사 1주일을 좀 넘긴 시점이었고, 아무리 경력자에 팀장으로 간거라고 해도 부실한 인수인계 문서만 보면서 맨땅에 헤딩하듯 세팅하고 파악하는 와중에 그 문제점을 처리하는데는 상당한 애를 먹었습니다. 인스턴스 재부팅/중지 후 재시작/타입 변경/서버 메모리 점유율 확인 등등 다양한 채널로 해결을 하고자 했지만... 결국 그 날 선약에도 몇시간 늦게 참석하게 되었구요.
퇴사 예정이던 프론트 개발자한테 얘기를 좀 많이 들었는데, 이런 일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에 있던 경력자들도 그 원인을 찾지 못해 그 때마다 AWS 세팅을 다시 했었다고.... 그리고 소위 고인물들인 장급들은 개발부서와 제대로 된 대화 시도는 커녕 일단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들고 와서 무작정 되게만 해달라고 한다고... 기획안도 스토리보드는 꿈도 못 꾸고 메모장에 장황하게 작성해서 던져준 후에 개발팀과 회의도 하지않고 그냥 그대로 해야한답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 찍어서 알게 모르게 자존감 깎이게 만든다나.
뭐 들은 얘기도 많지만 몸소 겪어보니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고, 아닌게 아니라 지난 번 서버 이슈 터졌을 때 사업부장이 저를 대하는 태도를 봤을 때 결코 거짓은 아님을 알겠더라구요. 그리고 저런 사이트 딜레이 현상이 자꾸 일어나니 나중에 제가 해야할 일이 사이트 하나를 새로 구축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단순한 소개 사이트도 아니고 로그인/회원가입/결제/주문등 중요 기능이 다 붙어있고 심지어 퍼블리싱까지 저 혼자 다 하는 것으로...
2주도 다 채우지 않은 시점이지만 더 있다가는 제가 미치든지 회사가 저를 짜르든지 할 것 같아서 그냥 더 험한 꼴 보기 전에 빠르게 퇴사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사직원을 제출합니다. 오늘까지구요. 평소 스타트업에 대한 편견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닌 곳도 있겠거니 했는데, 역시나는 역시나네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스타트업은 쳐다도 안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