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 고종 책 소개
우리는 헤이그밀사 사건을 일본의 강압에 못이겨 을사조약을 체결한 것에 반발해 고종이 밀사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밀사 비용은 국왕이 내야 했다. 그런데 일본의 기록을 보면 반일운동을 하던 미국인 헐버트가 미국 기업가 콜브란에게서 15만~20만엔을 구해서 세 밀사에게 줬다는 것이다. 그곳도 모자라 밀사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교민들의 성금을 받는다.. 밀사들이 이리저리 돈을 구해 헤이그로 간 것이다.
밀사 이위종이 헤이그에서 외국기자들에게 배포한 연설문이 미국 인디펜던트지에 실려 있다. 이위종의 연설문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잔인한 구정권의 학정과 부패에 질려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일본인을 희망과 공감으로 맞았다. 우리는 일본이 부패한 관리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만민에게 정의를 구현하며, 정부에 솔직한 충고를 해주리라고 믿어왔다. 우리는 일본이 그 기회를 활용해 한국인에게 필요한 개혁을 하리라고 믿었다.“
”We the people of Korea, who had been tired of the corruption, exaction and cruel administration of the old Government received the Japanese with sympathy and hope. We believed at that time, that Japan, while dealing possibly stern measure against the corrupt officials, would give justice to the common people and would give honest advice to the administrative work. We believe that Jpan would seize the occasion and lead the Koreans in their efforts to bring about the necessary reform.“
이위종이 해외에서 주군을 배신하는 연설문을 배포한 것이다. 학정과 부패를 일삼는 구정권은 고종이었다. 그는 고종도 성토하고 일본도 비판한 것이다. 고종을 개혁군주요, 계몽군주로 둔갑시킨 사람들은 이위종의 연설문을 소개하지 않는다.
1882년 6월 1년 1개월치 월급이 밀린 가난한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 임금은 청나라 군대를 불러 반란을 진압했다. 조선에 국방을 맡을 군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2년후 갑신정변 때에도 청나라 군대가 진압했다. 또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군대는 일본군대였다.
조선에 군대가 없었다. 대원군이 집권할 때 프랑스군과 미군을 무찌르던 조선의 군대는 고종이 없애 버렸다. 병사들은 창덕궁과 덕수궁의 호위부대로 갔다.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가 임금을 지키는데 동원되었고, 정변이 일어났을 때 외국군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댓가로 고종은 일본인에게서 뇌물을 받았다. 을사조약 체결 6일 전인 1905년 11월 11일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기밀비 10만 원을 집행했다. 이 기록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공개돼 있다. 조약을 체결한 댓가로 고종은 일본공사에게서 2만 원을 받았다. 이 2만원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5억원에 해당한다. 임금이 25억원 받고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다. 이완용도 고종의 절반인 1만원을 받았다. 이완용은 후세에 고종보다 더 많은 욕을 먹었다.
1910년 8월 나라는 사라졌지만, 고종과 순종은 천황가의 일원인 왕족으로 대우받았다. 재산은 막대했고, 세비도 지급받았다. 세비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50만 엔이었고, 1921년부터 1945년까지 180만 엔으로 유지됐다. 1911~1913년 회계 연도 조선총독부 세출예산이 5,046만 9,000엔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왕족들은 식민지 세출의 2%를 지급받으며 호의호식한 것이다.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13년 8월 9일자에서 고종의 일상을 이렇게 전했다. 나라를 내준지 3년째 되던 때였다.
”옥돌장(당구장)에 나가서 공을 치시는데 극히 재미를 붙여 여관(女官)들을 함게 하신다. 여름에는 서늘할 때에 석조전에서 청량한 바람을 몸에 받으시며 내인들을 데리고 이야기도 시키고 유성기 소리도 즐거워 하신다더라.“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